3-2x022
숙희는 남 캐롤라이나 주의 돈 장사 회사에서 담아온 밬스들을 급한대로 열어서 재정리하는 것으로만 오전을 보냈다.
그 동안 그녀의 보쓰가 방으로 찾아와서 당장 필요한 것들을 꺼내 가느라 정리가 늦어졌다.
그날 하루 종일 그녀와 그녀의 보쓰는 점심도 건너뛰어가며 자료 재정리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숨을 돌리고 회의실에서 마주 한 때가 저녁 여섯시를 훨씬 넘어서였다.
그녀의 보쓰는 사뭇 긴장된 분위기였다.
숙희는 그녀가 뽑아낸 숫자 합계를 들여다 보며 보쓰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웰..."
그가 그렇게 서두를 꺼내고는 큰기침을 무리하게 했다. [뭣 좀 발견했소?]
[남부 출신의 이 기업이 북동부의 부호들을 함부로 건드리다가는...]
"That's what I'm saying!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요!)"
"People up here are Anglo-Saxons. And people down there Southern Baptist. (여기 북쪽의 사람들은, 앵글로-샠슨들이고. 저 아랫쪽 사람들은 남 침례파인데.)"
숙희는 인종벽이 높은 북동부 지방의 백인 부호에게 그녀가 뽑아낸 자료가 과연 먹힐지 그것이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이다. [내 계산과 분석은 개런티 할 수 있어요.]
[그 보다는 우리의 결론이, 그러니까, 뭐요?]
숙희는 잘 정리된 서류 뭉치를 밀어보냈다. "네가티브."
그가 흠흠 하며 서류 쌓인 것을 보기만 했다.
숙희는 큰 짐을 보쓰에게 일임하고 일어섰다. "I'm going home. My fiance has been calling me a hundred time. (나는 집으로 가요. 나의 피앙세가 수백번 전화를 해 왔어요.)"
"땡 큐, 쑤."
"굿 나잇, 보쓰."
"오, 플리이스..."
그는 그녀가 보쓰라고 부르기만 하면 질색이다.
숙희는 화원으로 돌아와서 작은 감동을 받았다.
부엌에 아름다운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운진의 친필인 듯한 쪽지를 발견했다.
무리하면서까지 쫓아다녀야 하는 일이라면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냥
느낌을 적었을 뿐입니다
편한 밤 되시기를...
숙희는 처음 보는 그의 필체이지만 잔잔한 미소가 피어나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치고 필체가 참 곱네...
모를 사람이야.
가끔 성 낼 때 보면 굉장히 무섭던데, 글씨는 차분...
"체! 나보다 더 예쁘게 쓰네!" 숙희는 밥상 덮은 것을 벗기고는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찌게.
그것도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두부김치찌게.
그것도 그녀의 취향을 꿰뚫어 본 것처럼 돼지고기를 아주 잘게 썰어서 넣은 솜씨.
설마...
그녀는 설마 운진씨가 했겠나 언니가 하셨겠지 여기고 싶은데, 이상하게 그 찌게가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눈에 몹시 익다. 언제 운진씨가 해서 날 줬던 것처럼...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다.
그는 집에 있겠지만 그의 부모 중 누가 받으면 안 좋을 것 같다.
지금도 그를 볶아대는 모양이라던데.
숙희는 작게 솟구치던 흥분과 감동이 그 생각으로 착 갈아앉았다. 내일 하자.
그녀는 수저를 들어서 찌게 국물부터 맛보았다.
앗! 아직도 따뜻하네? 그렇다면!
그 때 부엌 벽에 매달린 전화의 벨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저를 내동댕이치고 전화기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