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5. 05:40

   숙희는 문을 열어주며 운진에게서 풍기는 진한 술냄새를 맡았다. 
   "자기... 술 먹고 운전..."
   "엉. 경찰에 잡힐까 봐 엉금엉금 기어왔소. 흐..."
   "어디서, 누구랑?"
   "엉. 누나네서 매형이랑."
   "거기를, 갔었어?"
   숙희는 가슴이 철렁했다. "왜 나한텐 말도 않고?"
   "엉. 그냥... 설이 결혼식에 못가서 미안하단 말도 할겸. 또 옛날에 그 냥반이랑 히스토리도 있었고 해서. 겸사겸사... 뭐 뒤늦게나마 화해하자고..."
   "그거... 뿐이야?"
   "엉. 다른 얘기는 없었어."
   "늦었지만 부조금이라도 주지."
   "어엉. 나중에... 또 볼 기회가 있겠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 하니까 두 사람이 더 좋아하더라구. 덕분에 늘 찜찜했던 감정도 씻어버리고."
운진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안 씻어?" 숙희가 그의 양말을 벗겼다.
운진은 대꾸 없이 천장을 올려다 봤다.
누이의 의미심장했던 눈빛이 새삼스레 기억났다. 
뭔가를 말해주려는데, 아마도 동생의 성격을 잘 알아서인가. 싫어하거나 원치않는 것을 들려준다 하면 질색하는 동생의 성격을 누님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그랬겠지. 
동생이 두려워서 주저하지는 않았겠지.
   "안 씻고 잘 거야?"
숙희의 두번째 그 말에 운진은 벌떡 일어났다. "알았소!"
남편이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숙희의 심정이 착찹하다. 
원래 말을 잘 안 하는 데다가 알아도 모르는 척 시침 떼는 그인지라 누이네서 오래 있었던 모양인데 아무 얘기 없었다고 앞가림부터 하는 것이 그렇다.
   '아이, 어쨌거나 저 이가 앞에 나서고 부터는 밖이 굉장히 조용한데... 이대로 잘 마무리로 이어져서 내가 원하고 계획한대로 돈이 다 모아지면 좋겠다.'
그나저나 돈이 다 모아지면 둘이 어디로 달아나기로 약속한 아담이 벌써 얼마째 무소식이다.
인터넷으로 은행 어카운트를 검색해 보니 아무도 건드리지않는데.
제프에게 갚으려고 따로 터놓은 어카운트에는 벌써 이자가 붙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애론이 서류 파일에서 찾았다며 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 거북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번호를 셀폰 히스토리에서 찾았다.
그녀는 씻고 나오는 남편에게 그 번호를 보여주었다.
   "당신 모르는 사람이야?" 그는 셀폰을 대충 보고는 도로 내밀었다.
   "나를 잘 안다고 하는데에... 나는 전혀 기억이 없거든?"
그 말을 남편에게 꺼내기까지 숙희는 많은 연구를 했다.
심지어 특급비밀처럼 간직하고있는 명단공책도 몰래 뒤졌다. 혹시나 그 옛날 알트 수하에서 하라면 하라는대로 나가라면 나가라는대로 따랐을 시절의 한 인물인지 해서...
   "나라면 기다려 보겠는데? 저들이 필요로 하면 또 연락오겠지."
   "그럴까?"
   "당신 기억에 없다는 사람을 고민하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뭐 있소."
   "나중에 또 전화오면, 자기 바꿔줘?"
   "그러든지."
   "자기가 누군지... 걸어보면 안 될까?"
   "아니."
   "어... 알았어. 나도 가만 있을께."
   "너무 이것저것 고민하는 것도 태아에게 안 좋아. 그냥 마음 편하게 먹고 출산이 얼마 남지않았으니까, 마음의 안정부터 가지시요."
   "어, 흐흐흐! 자기가 닥터냐? 네에, 닥터님."
   "그걸 꼭 닥터라야 그렇게 말하나..."
그의 고저없는 말투에 숙희는 입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