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으로 운진과 숙희가 처음부터 결혼했더라면 두 사람의 삶은 어떻게 이어져왔을까.
숙희는 여전히 같은 직업을 가졌을까?
운진은 여전히 수단 좋은 장사가로 돈 좀 만져봤을까?
사람의 일이란 상상만으로는 모르는 일이다.
두 사람이 결혼했더라면 어쩌면 금전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도 무척 고생했을 것만 같다.
숙희는 몰라도 은행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찾았을 테고.
운진은 아마도 단순 노동이나 남의 집 고용살이 등등으로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했을까...
그러나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만은 활발했을 것이다.
"우리 서로의 삶을 살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운명? 아니면, 우리의 팔자였을지도 모르지."
숙희가 결론을 내렸다.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 결혼해서 살다가 너무 힘들어서 헤어졌을지도 모르고. 자기 말마따나..."
운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 죽은 아내네처럼 숙희씨네 집에서 했던 장사를 물려받아서 했을까?'
그러나 그는 곧 속으로 후회했다.
그는 어느 새 안일한 사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형록이 그 전에 그런 말을 했다. 처갓집살이 하는 못난 사람 아니냐고.
처갓집살이만 했나. 결국에는 처갓집을 다 먹어버렸다!
심지어 처제라는 여인도 장모의 말마따나 따먹고...
'흐흐흐! 숙희씨 동생은 먼저 결혼을 했으니 그런 일은 안 벌어졌겠네.'
운진은 제 자신이 한심해서 그렇게라도 비웃고 싶었다.
지금도 뭐 하나 내다 쓸만한 구석이 없다.
눈만 돌리면 여자의 치맛속이나 들여다 보려 하고.
"당신은 그 당시 나와 합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살았지만 행복했을지도 모르오."
운진은 숙희가 이미 한 말을 기억 못하고 제 딴에는 좋게 말한다고 그렇게 말했다. "아닌 말로 흉한 꼴을 봤을지도."
"내가 한 말하고 뭐가 틀려?"
"뭐요?" 운진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려했다.
"자기 확실히 늙나 봐."
숙희가 우습다고 운진의 어깨 부분을 쳤다. "아냐, 정말이야. 자기 일이년 사이에 진짜 이상해졌다? 이거 병원에 가봐야 하는 일 아냐?"
"그런가?"
"아직 육십도 안 되어서 머리도 허옇게 변하고 기억력이 단 오초도 못 가니?"
"이런 마당에 나오려는 놈이 생겼으니..."
"정말... 어쩌냐아."
"..." 운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숙희는 다른 뜻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는 안 됐을 겁니다. 나는 당시 아주 나쁜 년이었어요...'
그녀가 집을 뛰쳐 나온 길로 알트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알트의 소위 경호원들에게 툭 하면 받던 체벌로 빨가벗겨져서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완전 기절하도록, 그것도 언놈의 가죽 혁대가 끊어져 나가도록 온몸이 멍들다 못해 터져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다.
그리고 넉달을 알트의 별장에 갇힌 채 어떤 스패니쉬 여인의 병간호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알트에게서 무마쪼로 받은 것이 칸도 한채와 차 한대였다...
"자기 아들 낳아줄까?" 숙희가 방긋 웃었다.
"그게 어디 우리 맘대로 되는 줄 알고?"
"아냐?"
"그래서 나는 딸만 둘이구만. 체!"
딸이란 단어가 이 날 따라 숙희의 가슴을 쳤다.
그리고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했다.
아니면, 꼭 시샘하는 신이 붙어 다닌다고 했던지.
그녀는 의붓딸 챌리와 킴벌리를 놓고 친딸 에밀리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살아난다.
이 이한테 고백하면 지진 날래나, 아니면, 긍정적으로 받아줄래나?
시집은 갔을래나, 아니면, 나 처럼, 아니면, 나 보다 더 비관되어 힘들게 살고 있을래나?
고모네가 아직 같은 데 살고 있을래나? 고모넬 찾아가면 상훈이가 있는데...
숙희는 자려고 꾹 감은 눈 사이로 뜨거운 눈물을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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