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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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비로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차라리 방사선 치료를 계속 받게 했더라면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을!' 운진은 아내의 명을 재촉한 놈이 저라고 대성통곡했다. 위선자. 독한 종자.아내 영란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 이혼 직후라는 것을 발뺌하려고 드는 위선자에다가 아내가 더 이상 회복의 가망성이 거의 없다는 데도 수술을 감행한 놈.이래서 인간들은 '내가 죽였다' 하고, 땅을 치는 것이다.운진은 눈을 딱 감은 채 위스키 잔만 기울였다.   '씨발! 이러다가 나도 위암 같은 거 걸려서 죽자!'   이래서 인간은 누굴 떠나 보내면 착해지나?운진은 울음이 나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그랬더니 정말 멈추지않고 눈물이 그리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를 속으로 얼마나 원망하며 아파하다가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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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버블 배쓰를 잘 하고, 남편 그러니까 전 남편 앞에서 알몸에 가운을 걸쳤다.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침대에 뉘어지면서 영란이 미소를 지었다. "졸려."   "그래."   "나 잠들면 가게에 가?"   "그래."그리고 영란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남편의 팔을 베고 긴 잠에 빠졌다.남편이 놓아준 몰핀 주사를 맞고. 남편이 해준 마지막 버블 배쓰를 받고. 그녀는... 그렇게 조용히 갔다. 고통없이...그녀의 얼굴은 몹시 야위었어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운진은 그녀의 상반신을 안고 오열을 터뜨렸다.저 아랫층에서 영호가, "이 씨발놈이 집엔 왜 또 와 있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올라왔다.   "어?"   그는 문 앞에서 굳었다. "누나..."   영란은 그녀가 언젠가 말한 그대로 화장되었다.그녀가 여동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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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영란을 구슬려서 MRI를 한번 더 찍게 했다.   "왜 자꾸 그런 걸 찍재?"   "확실히 해야지. 다 없어졌나."   "다 없어졌대?"   "결과가 나오면 알겠지?"영란의 구토와 소화불량은 하루하루 심해져 갔다.운진은 아내 영란에게 보신되라고 지어온 한약을 중탕으로 데우고 있다.영란은 유달스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 데운 것을 질색한다. 데워진 음식 안에 남은 전자파를 몸 안에 섭취하면 큰 병에 걸린다고.      "항암 치료 받은 사람들, 여자건 남자건 머리가 다 빠지잖아. 나 그거 연상하고 밤새 울었다?"   "수술 바로 했는데 머리가 왜 빠져?"   "나 머리 다 빠졌어도 자기가 날 봤을래나?"   "깎아보자, 그럼... 내가 보나 안 보나. 어때? 내가 자는 새에 싹 밀어줄까?"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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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록은 운진의 우려대로 가게를 닫았다. 죽어가던 그로서리 가게를 싸게 넘겨 받아서 살려 보겠다고 애만 쓰더니 결국... 게다가 그 망할 자식 영호가 가 있더니 그 며칠 새 닫아야 했나.그래서 형록을 다시 술가게에 쓰려고 하는데, 영란이 반대했다. "걔네들 멀리 가라 그래."   "왜 그러는데?"   "걔네들 곁에 있으면 내가 신경쓰여."   "맨 몸으로 어떻게 가라고 해."   "그럼, 자기가 돈 줘서 보내던가!"   "저 가게 주자. 우리가 뺐은 가게."   "그거, 아직 닫혀 있어?"   "라이센스만 바꿔서 가지고 있어."   "아니. 보내. 내 돈 해 줄께." 영란이 손짓으로 벽을 가리켰다.운진이 벽금고를 여니, 영란이 말로만 이것 들춰라 저것 줘라 해서는 무슨 공책 같은 것을 달라 했다. 그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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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이틀 후에 깨어났다.그녀가 깨어나서는 제일 먼저 찾은 것이 '자기' 였다.그런데 그녀의 병실에 영호와 친정모가 와 있었다.   "미친 년! 이혼한 서방은 왜 찾는다니?"   "흥!"그 두 모자는 영란이 이혼하면서 차지한 재산 부분에 관심이 많다. 다시 말하면, 영란이 죽을 때, 그녀 앞으로 돌아간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갈 거냐는... 보나마나 딸 둘일텐데, 그것을 빼앗는 방법이 있을지.   "자기..."   영란이 눈을 감은 채 기운없이 불렀다. "자기..."영호가 하는 수 없이 복도로 나가며 주머니에서 셀폰을 꺼냈다.   일요일이라 챌리가 아빠 운진을 따라서 병원에 왔다.영란은 힘 없이 눈을 떴다. "자기, 나 목 말라."   "그래."   운진은 노련한 간호사가 일러준대로 영란의 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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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의사가 제안한 자궁을 제거하는 방법에 찬성했다.그는 뭐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느냐 하고, 영란을 나무랐다. 여자에게서 자궁을 제거한다는 것은 여자로서의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영란의 말에 전남편이란 사람은 임신을 못할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그렇게 나무랐다.    "영란아. 제발 이번 만이라도 내 말 좀 들어라."사진을 보여주며 '무질서한 생활을 했느냐' 고, 물었던 그 의사가 운진을 자꾸 봤다. 역시 두어번 같이 왔던 날라리 같이 보인 자와 남편은 풍기는 기세부터 달랐다.  영란은 겉으로는 앙탈을 부리는 척 해도 속으로는 너무 좋아 울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이 예전의 그 바리톤 음성으로 타이르는데, 그녀는 너무 좋다.   "내가 옆에 있어줄께, 수술 받자."   "수술 받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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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조가의 아파트로 또 찾아갔다.영호와 가게 문제로 한바탕 치고 받은 뒤라 조가의 반응은 공격적이었다.   "아, 형! 우리 싸운 건 나중에 화해하고, 우선 얘기 좀 합시다."   영호가 아파트 안으로 무조건 들어섰다. "어, 누가 계시네..."안면이 있는 것 같은 여인네가 부엌에서 나와 방 쪽으로 부지런히 사라졌다.   "니 시방 병 주고 약 주냐?" 조가가 싸울 듯이 나왔다.영호가 조가의 두 팔을 붙잡고 앉혔다.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뭐시."   "우리 누나가 또 그 새끼 편을 든단 말요."   "그 새끼가 누구여? 아, 그, 이혼했다는 느그 매형새끼?"   "그렇다니까? 둘이, 씨발, 한 침대에 누웠더라니까?"   "참말로 거기 누나란 여인... 대단하여, 잉."   "헛,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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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운진은 몸을 가만히 일으켰다.그가 받쳐 주었던 팔을 빼려는데, 그녀가 흠칫 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운진은 도로 누우며 팔을 더 밀어 넣었다.    "자는 줄 알았어."   "자기, 나 밉지?"   "뭐?" 운진은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을 생략했다.   "..."영란은 아마도 잠꼬대인지 아니면 잠꼬대인 척 마음의 말을 했는지 조용하다.운진은 형록에게서 받은 감동대로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남의 자식도 받아들이는...저 아랫층에서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식은 누나가 환자인데도 조심을 안 하네! 참 덜 떨어진 자식..." 운진은 움직일까 하다가 처남이 보든말든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눈을 감았다.   "어? 뭐야... 어? 아니잖아."   영호가 방문 앞에서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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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조용히 넘어가고, 그럭저럭 새해가 되었다. 운진은 딸들을 데리고 모친에게 문안 드리러 갔다가 숙희가 서부로 전근갈 예정이고, 설이는 합병 때 감원을 당할 것이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빌딩이, 해프 텅 비었어요. 그 아줌마는 캘리포니아로 가세요.” 설이가 말했다.    ‘그 나이에 객지생활이 용이한가...’ 운진은 아무한테고 내색 않고 떡국만 얻어 먹은 후 아파트로 돌아왔다.    운진은 어렴풋이 그녀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던 것을 기억했지만 어디 사는지 모른다. 이름도 이젠 가물가물했다. 언니 따라 무슨 희 일것만...운진은 기분이 불쾌했다. 아니. 그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녀 얘기만 나와도 주눅이 드는 자신이 한심하고 마구 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식을 아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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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불륜의 씨앗! 언니가 표현한 그 말이 영아의 귓속에서 쟁쟁거렸다. 영아는 그 말만 생각하면 슬퍼졌다. 법에 저촉만 안 받으면 정말은 형부와 같이 살고 싶었다. 형부와 가진 성행위는 편안하고 온 몸이 저리는 쾌감이었다. 반면 형록은 몹시 거칠었다. 그는 자세도 금방금방 바꾸자 하고 때로는 잘 안 된다고 짜증을 냈다.   밖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형록이 와서 언니 영란과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곧 아파트문이 세게 닫혔다. 그리고 형록의 상기된 음성이 들렸다. “영아! 영아! 어딨냐!”영아는 그제서야 방문의 고리만 풀고 침대로 올라가서 누웠다. 아무래도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아기가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다.형록이 생각도 없는지 방문을 벌컥 열었다. “괜찮냐?”영아는 조금 놀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