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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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0. 09:23

   이튿날.
운진이 영진과 함께 버지니아로 가기로 한 날, 아침부터 얼음비가 내렸다.
그래서 운진은 영진에게 화원으로 오지 말라고 전화를 걸었는데.
수영이 받아서는 벌써 떠났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운진은 아예 바깥 문을 열어놓고 찻길을 주시했다.
   '이 비가 땅에서도 얼면 안 되는데...'
그는 그린색 차만 지나가면 머리를 내밀었다가 도로 넣었다. 
이 날 따라 이 조용한 길로 그린색 차가 왜 그리 많이 지나가는지. 게다가 비엠더블유 차는 왜 또 그리 많이 지나가는지. 알고 보니 흔한 차인가 보다고. 이 계절에 과수원은 무슨 차들이 드나드나...
그러다가 운진은 전화벨 소리 때문에 문을 열어놓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전화는 그의 누이에게서였다. 아직 출발 안 했느냐고.
   날씨가 안 좋으니까 정 뭐 하면 다음에 날씨 좋을 때 가라고.
   "만일 날씨가 안 좋아져서 못 갈 거 같으면 누님에게 전화드릴 께요. 아니면, 제가 버지니아에다 전화를 걸던가요. 하여튼 알았습니다. 알아서 할 게요."
   "음. 버지니아에 걸 거면 니가 해. 난..."
   "녜. 저한테서 아무 연락없으면 간 줄 아세요."
   "그래. 미안하구나. 귀찮은 일 시켜서."
   "아이, 누님도."
   "애들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
   "근데. 지금 누님 곁에 있는 그 분... 이 괜찮다고 했어요?"
   "오, 참! 애들 이리 데려오는 거 아냐."
   "그럼요?"
   "엄마네루."
   "아아..."
운진은 통화를 끝내고 그럼 그렇지 하고 입맛을 다셨다. 점잖은 체 하는 자식이 술 들어가면 누이를 손찌검에다... 정작 전남편 사이의 애들이 온다는데, 같이 못 있겠다 이거지.
그의 명상 아닌 공상을 누가 뒤에 와서 왁 하고 깨웠다.
   "전 운진씨 앉아서 자는 줄 알았어요." 영진이었다.
운진은 반사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부터 보았다.
   아홉시. 
   지금 출발하면 열한시나 열두시.
   애들 태우고 바로 온다 해도 여기 도착이 두시나 세시.
영진이 손바닥에 놓인 차 열쇠를 내보였다. "안 가요?"
   "왜요. 미쓰 킴 차로 가요?"
   "저 추렄 기름 많이 먹잖아요."
   "그래도 내 볼 일 가면서 미쓰 킴 차로 갈 수는 없죠."
   "괜찮아요. 그렇잖아도 오빠가 차는 하이웨이 같은 데 나가서 콱콱 밟아줘야 열릴 데 열리고 엔진에 달라붙은 불순물도 다 타 없어진다면서..."
   "흐..."
   "그리고 제 차 기름 얼마 안 먹어요. 독일제라."

   그래서 둘이 화원을 나섰는데.
영진이 젖은 데를 딛었다가 넘어질 뻔 하면서 운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오늘 안 되겠네요. 어는데?'
   운진은 영진을 꼭 붙잡아서 문 안으로 넣었다. "비 오다 얼면 일 나죠."
   "저 집엔 어떻게 가요?"
   "일단 좀 더 보고, 낮 기온이 올라가면 그 때 가시던가 해야지, 지금 나섰다가는 미쓰 킴 보다는 딴 운전사들이 사고낼 위험성이 더 많아요."
   "그럼, 이 안에서 기다려요?"
   "그래야죠. 혹시 텔레비젼에서 무슨 일기예보 같은 거 안 하나..."
운진이 텔레비젼을 켜려고 움직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콜러 아이디를 보고는 톸 버튼을 눌렀다. "그래, 병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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