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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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1. 04:46

   영진의 부모가 운진의 의복을 악다구니로 찢어 발기려 든다.
운진은 묵묵히 땅속으로 내려가는 관을 본다. 
거짓말이거나 꿈이거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관 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있고, 영진네에게 속는 것 같다.
관이 바닥에 완전히 내려지고, 천이 당겨져 올라왔다.
수영의 손에 의해 첫번째로 흙이 흩뿌려졌다.
그것까지 보고 운진은 양 쪽에서 앙다구니로 식식거리는 김씨부부를 슬쩍 밀쳤다.
부부가 슬쩍 밀렸는데도 두 팔을 버둥대다가 흙더미 위에 주저앉았다.
운진은 수영을 노려봤다. 
수영이 묵묵히 서서 삽을 흙에다 찍는다.
운진은 그에게 손을 들어보이고 지나쳤다. "잘 사시요?"
순간.
운진의 팔 하나가 허공을 갈랐다.
턱!
운진의 손에 몽둥이가 잡혔다. 아니. 
삽자루가 잡혔다.
운진은 삽을 천천히 내려 놓았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것이고... 그러나 이젠 인연이 없었으면 좋겠소."
   운진은 영진의 부모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따님의 청순함에 기가 죽어서 감히 불순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따님이 그랬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으면 무슨 사고가 꼭 벌어지느냐고. 왜 사람들은 그런 눈으로 보느냐고."
   따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걱정을 안 하기 때문에 화원에 놀러와도 아무런 겁이 안 나고 조심도 안 한다고. 물론 따님이 그 날 저의 화원에 온 것이 잘못된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과잉보호가 빚어낸 참극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애쓰지 마십시요. 
그 날 따님이 데릴러 온 오빠와 다투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따님이 토우 추렄에 타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그 망가진 따님의 차가 뒷바퀴가 빠지면서 체인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토우 추렄이 흔들리다가 전복되지만 않었어도... 
   따님이 사망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운진은 집으로 돌아와서 영진의 명복을 빌었다.
   이제 고통도 눈물도 없는 곳으로 가셨으니 행복하시요. 
   그대의 미소가 내 심장을 찌를 때마다 내 입술은 말을 하고 싶어서 간질간질했었소.
내뱉으라고. 
토해내라고.
그대의 억울한 죽음을 내가 어찌 되돌릴 수 있겠소.
부디 잘 가시요.
그의 귓전에 영진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하하하! 
   에이그. 남자들은 다 똑같애!
순간.
운진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자신만의 어떤 직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분노를 영진의 음성이 내리 누른다.
   미스타 오 찬양하는 거 더 보고 싶어요.
   왜 안 나오셨어요?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제 프라젴트의 모델이 되어주실래요? 
사실은 협조자격이지만.
운진의 귓전에 성탄절날 불러야 할 찬양 준비곡 중 하나의 선율이 흐른다.
   A thrill of hope
그는 벌떡 일어서서 시계를 찾았다.
   '지금 가면 연습 막 시작하겠다!'
그는 미친 놈처럼 서둘러 화원을 나섰다.
그런데 밖은 온통 백색세상에 여전히 얼음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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