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승이 한풀 꺾인다 싶더니 말복 지나 기온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찾아온 일요일에 한씨네가 나가는 교회에서 공희의 결혼식이 열렸다.
운진은 이발하고 정장으로 차려 입었다.
숙희는 처음에는 안 간다고 고집 피우다가 그녀 역시 정장 차림에 나섰다.
"이백명 먹을 거 예산하고?"
그 교회 아랫층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숙희가 한 말이다. "백명분도 안 되겠네."
숙희는 또 분노가 솟는다.
그까짓 돈 몇푼 갖고 사람이 얼마나 치사해지는지 보면서.
"식만 보고 갑시다."
운진은 일부러 맨 뒷자리 아무 데나 앉았다.
숙희도 그 옆에 앉았다.
신부의 가족이면 당연히 앞에 마련된 자리가 있을 텐데.
두 사람은 마치 남인듯 상관않는 것이다.
공희모의 얼굴이 자꾸 뒤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결국 한씨가 뒤로 찾아왔다. "앞으로 오너라."
"괜찮습니다." 운진은 손도 내저었다.
"아니. 숙희 너 말야."
"우리 금방 어디 가야 해요." 숙희가 손목시계를 봤다.
"언니가 동생 결혼식에 와서 금방 간다는 게 말이 되니?"
운진이 목을 뒤로 젖혔다. "한씨.'
"뭐?"
"우리가 와 봐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아뇨?"
"뭐?"
한씨가 눈만 돌려서 어디를 봤다.
숙희는 그 방향을 이미 보고 있었다.
상훈이가 마치 한씨를 지원이라도 해야 하면 할듯 이쪽을 살피는 것이다.
운진이 그 방향을 천천히 찾았다. "쟤, 조카새끼네?"
숙희는 그런 것은 싫어서 운진의 팔을 슬쩍 잡았다 놓았다.
그런데 운진은 다른 이들도 봤다.
최영란?
최영란이 어떤 연관으로 여기까지?
운진은 남자 하나를 간단히 기억해 냈다. 저 자식, 최영란의 남동생...
운진은 어떤 스릴을 느꼈다.
만일 최영란이가 우리를 발견하고 접근한다.
나는 숙희씨를 의식적으로 친하게 한다.
저 여자는 인척관계를 이미 알고 온 건가?
그렇지만 나를 여기서 보리라고는 전혀 기대 안 했겠지?
누가 쫓아와서 한씨의 귀에다 뭐라고 속삭이고 갔다.
한씨가 숙희더러 너 여기 좀 있어 하고는 그 자를 쫓아 부지런히 갔다.
잠시 후 이 교회의 본당 옆문에서 한씨와 백색 웨딩 드레쓰를 입은 공희가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저 앞에 시커먼 피부에 남루한 정장을 갖춘 미스터 차가 서 있다.
지루한 예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 가족 친지들의 사진 찍기를 한다고 소란한데.
정작 숙희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뒤를 상훈이 야 너 나 좀 보자 하고 쫓아 나갔다.
퍽! 퍽!
그 두 소리와 함께 상훈이 그 교회 주차장에 나뒹굴었다.
운진이 상훈을 내려다 보며 손가락을 눈 앞에 치켜 세웠다.
"계속 엉겨라. 아주 숨통을 끊어줄테니."
숙희에게는 몹시 생소한 운진의 음침한 음성. "이 십할 것들! 숙희씨 미국에 잘 들어오라고 곁들여 들어오게 해줬더니 어디서 맞먹고 지랄들이야, 지랄이! 죽고 싶어,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