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건물에 한국 처녀가 하나 산단다.
침대를 하나 사려는데, 지금 사면 배달은 내년에나 된다는구나.
내년 해봐야 며칠 안 남았지만 추운데 바닥에서 어떻게 담요만 깔고 계속 자니.
네 추렄으로 가서 좀 실어오려무나.
전에 네 추렄으로 그 처녀네 아버지 짐을 실어다 준 적이 있다며?
그래서 이튿날, 운진은 누이의 말을 듣고 아파트로 갔다.
그리고 추렄의 히터를 들어놓고 하늘색 혼다 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왔다!'
운진은 용기를 내어 추렄에서 내렸다.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갔다. "이렇게 또 만나는 자체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숙희가 눈을 크게 떴다. "우연이 아니라뇨?"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다시 만나지고 있는 겁니다."
"글쎄요. 전 그렇게까지 과장되게 생각진 않는데요."
"어쨌거나 오랜만입니다."
"네. 그건 동감이예요. 그 동안 잘 지내셨죠?"
"어, 녜. 그럼뇨."
"좀... 엉뚱한 데가 있으신가 봐요?"
숙희와 운진이 '침대 창고'라는 이름의 상점을 찾아가서 고르는데.
누가 보면 신혼부부가 같이 고르는 것처럼 보였나.
그녀가 트윈 사이즈의 값을 물어보니 세일즈맨이 야릇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숙희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세일즈맨이 마침 풀 사이즈를 연말 대세일한다며 소개했다.
거기서 매트레스와 밬스 스프링과 프레임 그리고 침대에 필요한 앜세사리를 몽땅 추렄에다 싣고 두 사람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운진은 매트레스와 밬스 스프링을 혼자 날랐다.
"어디다 놓을까요?"
운진은 창 가를 이미 보고 있지만 방 임자는 다른 이이기 때문에 물었다. "아예 처음부터 자리를 잡아야 나중에 힘들게 옮기는거 안 하죠."
"거기 창가에 놓으시려는 거 아녜요?"
"여기가 좋겠죠?"
그리고 운진은 남의 여자의 침대를 일체 짜맞춰 주었다. 아예 그 날 저녁부터 누워 잘 수 있도록 침대 시트도 덮어주고 베개도 만들어주고 등등.
정작 방주인인 숙희는 남의 집에 온 것처럼 구경했다. "사례를 어떻게..."
"밥이나 주세요." 운진이 부엌 쪽을 기웃거렸다.
"참 내..."
숙희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좀 그런데요?"
운진이 아예 부엌을 들여다 봤다.
쿸 하는 것 같지 않네.
"참! 그 때 제가 사드린 빵 잡수셨어요?"
숙희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네."
"와아! 그 때 배고프다 먹어서 그랬는지, 그 빵, 진짜 맛있었죠!"
"빵 사드려요?" 그래 놓고 숙희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런데 둘은 운진의 추렄에 또 타고 나갔다.
둘이 간 곳은 부근에 새로 생긴 중화요리집이다.
숙희는 짬뽕을 시켰다.
운진은 삼선 간짜장 꼽배기를 시켰다.
"짬뽕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매운 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숙희는 감정을 겉으로 안 나타내려고 일부러 찬 척 하고 운진은 실내인데 휘파람을 불었다.
숙희는 결국 그에게 하지 말라고 눈을 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