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모는 아들에게 단번에 노 했다.
"엄마는 왜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노 부터 해."
"애들을 니가 왜 맡아."
"현재 정식 이혼한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 사람이 각자 다른..."
"그래서 내가 밖에 챙피해서 얼굴을 못 들잖니."
"그런 건 중요치 않아요, 엄마."
"그럼, 뭐가 중요한데, 너는."
"애들."
"애들이, 뭐."
"애들 저러다 우울증 걸리거나 자폐증처럼 될지 모르겠는데?"
"니가 닥터니?"
"애들이 나랑도 눈을 안 마주쳐."
"저, 저 인간이 애들 안 원한다고 해서 니 누나가 보낸 거잖니."
"그러면 버지니아에서 누이더러 양육비 달래잖아."
"뭐라구?"
"좀 전에 통화했는데..."
"너는 왜 일을 벌리니."
"엄마 딱 육개월만 더 청소차 타고 은퇴하슈."
"은퇴하면?"
"그 때 내가 졸업하고 화원을 본격적으로 열면, 생활비 내가 댈 테니까, 엄마 우리 조카들 키우라고."
"내가 이 나이에 손주 손녀 뒷치닥거리 하리?"
"그럼, 내가 장가 안 가고 조카 키우리, 엄마?"
"그러든지."
운진은 모친이 그렇게 나오면 일단 수긍하시는 걸로 알고 여태 자라왔다.
"니 누나가 애들 보내놓고 얼마나 심난해 했는데. 그걸 니가 결국 나서는구나."
운진은 수영에게서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좋게 거절했다.
그를 만나면 영진의 생각이 또 나서 힘들까 봐도 아니다.
그들에게 죄의식 같은 것을 느껴서도 아니다.
행여 그들이 사과를 주고 받자 할까 봐 화가 나서도 아니다.
운진은 수영에게 감정이 무척 나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룻만에 한국을 나갈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미리 준비했겠지.
그리고, 체! 니들은 뭘 얼마나 잘났길래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나.
운진은 수화기를 아예 내려놓고 또 술을 한다.
특히 밤이 오면 영진이 누웠다가 간 소파가 싫어진다.
그 때 무조건 붙잡고 안 보내는 거였어!
확 일을 저질러 버리는 거였어!
그의 외침소리를 눌러버리는 말이 들려온다. 그러지 말고 좋아하는 이를 만나서 재미있게 살면서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영진씨?
그 좋아하는 이와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걔가 저예요.
'내가 좋아하는 이는 강진희였는데.'
운진은 빈 위스키 병을 바닥으로 굴렸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운진은 병선이 자식인가 보다고 후다닥 움직여서 불이란 불을 다 꺼버렸다.
사촌도 귀찮아!
새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아는 여자들마다 찝쩍거리고 말야.
노크 소리가 더 크게 났다.
"가라, 가! 응? 제발." 운진은 그렇게 소리쳤다.
문이 밖으로부터 열렸다. "운진씨?"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운진은 가물가물해지면서 모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