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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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2. 01:00

   운진은 누이에게 꿀밤을 맞아가며 이끌려서 성가대 연습에 나왔다.
지휘자 선생이 화가 몹시 난 모양이었다.
딱딱딱딱!
그가 악보대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오늘은 베이스부터!"
진희가 운진의 눈치를 보며 베이스 파트의 첫음을 건반에 두드렸다.
운진은 술김에 반 박자 정도 늦게 발성이 나갔다.
   "어이! 똑바로 좀 해! 엉?" 지휘자 선생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찌익!
운진의 손에 들려진 악보가 찢어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대열을 벗어났다.
   "뭐야, 저거!"
   "미스타 오!" 
지휘자 선생과 진희의 말이 동시에 나왔다.
운진이 연습실을 나서는데, 진희와 영란이 거의 동시에 따라 나갔다.
그러나 운진은 계단을 단숨에 날아 내려갔다.
두 여인은 계단 끝에 서서 그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빈 자리를 내려다 봤다.
   내일이 성탄절 예배인데.

   운진은 추렄을 미친 놈처럼 몰아서 화원으로 돌아왔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는데, 소파에 영진의 환영이 보인다.
   저 운진씨 찬양하는 거 더 보고 싶어요.
   그만 뒀어요.
   왜요!
   노래가 안 나와요.
   그러지 말아요.
   됐어요.
   그러지 말아요. 
운진은 그녀의 환영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섰다가 홱 돌아섰다.
   그가 연습실에 다시 들어섰을 때는 거의 다 돌아가고 몇사람 안 남았다. 운진은 찢어버린 악보가 아직 바닥에 있나 하고 이리저리 찾았다.
   "여깄어요." 하며, 스카치 테이프로 붙인 악보를 건네는 이는 영란이었다.
운진은 그것을 받을 손이 안 나갔다. 
   와! 이 여자, 정말...
운진은 그녀로부터 돌아서려다가 진회와 마주쳤다. "지니, 미쓰 강, 아직 안 가셨군요."
진희가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운진은 영란에게 머리를 꾸뻑 해보이고 악보를 받았다.
진희가 첫곡의 첫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 홀리나이트~
영란이 독창을 시작했다. 더 스타즈 아 브라이틀리 샤이닝

운진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베이스 파트의 차례를 기다렸다.

   어 쓰릴 어브 호프 더 위어리 월드 리조이씨스
   뽀(for) 욘더 브레이크스 어 뉴 글로리어스 몰은(morn)
   
   뽈(fall) 온 유어 니이즈 오 히어 더 앤젤스 보이씨스
   오 나이트 디바인 오 나이트 웬 크라이스트 워스 볼은(born)

그의 꾹 감은 눈에 영진의 미소짓는 얼굴이 떠오른다.
   행복해요...
운진은 목소리가 태평양을 건너가라고 크게 소리내어 나머지 후렴을 불렀다.
진희가 감동에 젖어 머리를 마구 흔들며 끝맺는 부분을 힘차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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