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영진이가요... 진짜 내성적이라 남한테 말을 못 해요."
양품점 아가씨가 한씨에게 하는 말이다. "그 날 거절을 못하고 갔는데요. 내가 아는 영진이는 그것 때문에, 인제, 여기도 안 올 거예요."
한씨는 천상 뉴 욬을 가야 하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운진은 챙 넓은 밀집 모자를 눌러쓰고 큼지막한 색안경을 쓰고 장사한다.
그의 코너는 소위 연필탑이라고 불리우는 워싱톤 머뉴멘트 부근인데, 가끔 그의 자리를 새치기하는 한국인이 있다. 그러면 그는 조금 떨어져서 좌판을 벌리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일부러 찾아서 온다.
무슨 신제품이 또 나왔나 하고. 또 여행객들이 처음엔 그냥 들여다 보다가 때로는 신기한 듯 때로는 여기서 이런 걸 발견하게 된다면서 많이들 집는다.
옆에서 하는 벤더가 운진의 물건을 훔쳐 보고 뉴 욬을 갔다 오면, 운진은 그 새 또 다른 물건을 쫙 벌려놓고 잘 판다.
남들에게 미움 받을 스타일인데, 그 남들이 운진에게 감히 그렇게 못한다. 그들이 때때로 손님과 말이 안 통하고 못 알아들어서 실랑이를 할 때면 오운진이 중간에서 통역도 해주고 해결을 봐주기 때문이다.
운진은 한 무리의 여행객들과 흥정을 하고 하는 틈에 영진이 온 것을 몰랐다.
그는 손에 잔뜩 쥐고 있던 돈을 대충 헤아려서 주머니에 쑤셔넣고 물건 사고 돌아서는 손님들에게 큰 소리로 땡 큐 하며 굽신댔다.
누가 그의 앞에 다가섰다.
"저, 링이 좀 필요한데요."
"녜, 녜! 어, 미쓰 킴! 녜?"
"저, 링이 좀 필요하다구요."
"링은 뭐하시게요?"
운진은 그녀의 차림새를 봤다. "원피스에는 이런 걸 안 하는데."
"며칠 고민했는데요. 누가 좀 필요하다고 해서요. 친구가요!"
"친구가요? 혹시 양품점 진희씨가요?"
"녜!"
영진은 돌파구가 생겼다. "친구 진희가 필요하대요! 어떻게 아셨어요!"
"오오... 몇개나요?"
"많이요."
영진은 긴장해서 얼굴 근육이 마구 움직이려고 한다.
그녀는 생전 남에게 무슨 부탁 같은 것 한 적 없고, 부탁 받은 적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 말마따나 며칠 고민하다가 그를 찾아와서 말을 꺼낸 것이다. "얼마 있는데요?"
운진은 링이 담긴 밬스를 들었다. "그럼, 이걸요, 난 팔만큼 팔았으니까. 그리고 이제 유행 지나서 잘 안 나갈 거거든요. 다 줄께요."
"정말요?"
영진은 어깨에 맨 백을 열려고 했다. "얼마치예요?"
"미쓰 킴한테는 내가 돈을 못 받죠. 진희씨한테는 알아서 달라 하세요."
"그럼, 돈 받아서 이리로 가져와요?"
"아뇨. 받지... 마시던가. 만일 얼마라도 주면, 그걸로 밥 먹읍시다."
"밥은 제가 사드릴께요."
그런데 누가 또 그들 앞에 와서 섰다. "밥을 사요?"
"미스 킴이 제 사촌형에게 밥을 왜 사요?" 그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운진과 영진은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어, 병선이, 니가 웬일이냐?"
"안녕, 하세요."
운진과 영진은 괜히 놀랜다.
"둘이 아직 만나나부지?" 병선이 사뭇 시빗쪼다.
운진은 조금 난처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영진이 밬스를 들고 홱 돌아섰다.
"이번 토요일날 화원으로 갈께요!"
그녀가 뒤도 안 돌아보고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녀가 부지런히 뜀박질 하는 것이었다.
"진희씨가 심부름 보냈나 봐." 운진은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
"성, 가랭이 찢어지기 전에 양다리 거두지?"
"지금이라도 미쓰 킴 쫓아감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