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에게 기다리는 대나는 연락이 없고, 레전씨 뱅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름 한철 바쁜 시기에 잠깐 채용하는 임시직이 열렸는데, 혹 관심 있느냐고.
대우는 시간당 10불.
언제까지 한다는 보장을 못 한다고.
그래도 관심있으면 방문하라는 솔직히 모욕적인 통화 내용이었다.
그러나 숙희는 일단 수락했다.
비지네스 매네지먼트를 전공한 이에게 텔러 임시직이라니.
그러나 숙희는 일단 출퇴근이란 것을 맛보고 싶다.
그 동안 다른 데를 계속 알아보면 되겠지.
그 동안 혹시 대나에게서 연락이 올지.
숙희는 더운 날씨이지만 정장 차림으로 은행을 찾아갔다.
정문의 대리석으로 된 아치가 새삼 고풍 분위기를 자아냈다.
숙희는 그 정문을 힘차게 당겨서 열고 들어섰다.
바닥은 언제나 봐도 유리에 물을 뿌려놓은듯 말갛고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녀는 편안한 의자들을 늘어놓고 텔러 용무 외에 은행 볼일을 상담하는 자리로 가서 일단 방명록을 찾았다.
그녀가 차례에 맞춰 이름을 써넣으려는데.
"Hi! Can I help you?"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만으로도 백인일 것 같은 여자의 음성이 날아왔다.
숙희는 자세를 얼른 바로 했다. "Hi! My name is Sue Hahn."
"Yes? How can I help you?"
"Someone called me about summer job? (여름 일감으로 누가 전화를 했는데요?)"
"오오!..."
백인 여자가 좀 아쉽다는 듯한 표정과 호기심에 찬 표정을 섞어 나타냈다. "Have a seat. please? (앉아 계시지요?)"
"땡쓰!" 숙희는 아무 빈 자리에 가서 조심히 앉았다.
[이름이, 다시, 뭐라고 하셨죠?]
"쑤 한. 에이치-에이-에이치-엔."
"오케이... 해브 어 시트, 플리이스?"
그 여자가 손에 잔뜩 껴안은 서류들을 들춰보며 걸어갔다.
숙희는 텔러들 쪽을 쳐다봤다.
보이느니 텔러들도 고객들도 모두 백인이다.
'디 씨에는 백인들이 아직 많이 사는구나...'
숙희는 그제서야 까마득히 높은 라비 천장을 올려다 보고 몇십만불 하지 않을까 싶은 산데리아를 구경했다.
전등이 나가면 어떻게 갈아 끼우나...
저 높은 데를 어떻게 올라가.
숙희는 이어 텔러들 뒤로 큰 원형 구멍을 봤다.
사람의 키 두배만한 지름의 구멍은 보기에도 육중할 것 같은 역시 원형의 문이 달렸다. 사람들이 그 안으로 부산히 드나든다.
"Hi!"
이번에는 남자의 상냥한 음성이 들려왔다.
숙희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섰다. "Hi!"
말끔하게 생긴 백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Hi! My name is Howard Michaels."
[하이! 쑤 한이예요.] 숙희도 악수를 했다.
그 남자가 어떤 서류를 들여다 보고는 숙희를 다시 봤다. [제인이 당신의 어플리케이숀을 찾아서 가져 왔어요. 아마... 섬머 임시직으로 선택된 것 같은데, 인터뷰를 해 보라고?]
아까의 백인 여자가 으흠 하며 미소를 보내왔다.
"땡쓰!"
"This way, please?" 하워드라고 밝힌 남자가 안쪽 방향을 가리켰다.
숙희는 제인이라고 불리운 여자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하워드를 쫓았다.
처음 인터뷰 한 남자 아니네.
그리고 숙희는 잠정 회계 사원 보조로 취직이 되었다.
텔러들 뒤에서 그 날의 출납 업무가 끝나면 시행착오가 발생했나 면밀히 조사하는 직위.
물론 하워드가 추레이닝을 책임진다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