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영진을 그녀의 집에다 내려주고.
정화네에서의 저녁 초대를 어떤 핑게로 미루고.
그리고 저녁에 화원에서 숙희와 자리를 마주 했다.
"이번에 복직한 이후로... 일은 괜찮아요?"
"일감이 점점 늘어."
운진은 숙희의 그런 말이 맘에 참 안 든다. 게으른 것도 아니고... 콤플레인이 참 많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리퀘스트도 줄어들고... 커미쑌 많이 받는 고참들을 레이어프 시키고 하니까 신참 같은 나에게..."
"어쨌든, 뭐, 좋은, 다행이요,"
"그래서, 우디... 언제 결혼, 해?"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이 흥 하고 웃었다.
"왜 그렇게 웃어?"
"제가 결혼에 환장한 놈으로 보입니까?"
"선 본대매. 선 보면 결혼하는 거 아닌가?"
"선 본다고 다 결혼합니까?'
"그럼, 뭐 하러 선 봐?"
"혹, 누가 알아요? 선 몇번 보다가 진짜 천생연분을 만날지?"
숙희는 운진의 비양거리는 말 때문에 속에서는 화가 나는데, 그것을 겉으로 보일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천생연분... 잘 만나라구."
"고맙시다."
"그러면... 난, 빨리 이사할 데를 알아봐야겠네?"
"때가 되면 미리 알려드릴께요. 하지만, 미리 서두르신다면, 맘대로 하슈."
"어쩌면... 샬롯트로 갈지 몰라."
"잘 됐네요."
"아예 이글의 전문... 으로..."
"아아..."
운진이 얘기 다 끝났다는 듯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숙희의 손에 쥐어져 있던 스냌 봉지가 던져졌다. "치이!"
물론 스냌 봉지는 무게도 없고 바람을 타기 때문에 얼마 날아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그 안에 들었던 콘칲이 바닥에 떨어졌다.
숙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운진의 얼굴에 뜻모를 웃음끼가 스쳤다.
숙희가 손을 얼굴에서 떼었다. "나더러 여기 있으라 할 때는 내가 준비될 때까지 아니었어?"
"숙희씨의 준비란 게 뭘 어디까지인지 모르는데요?"
"나한테서 뭘 원하는데?"
"그건 숙희씨 자신이 알죠."
숙희가 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마구 훔쳐냈다. "내가 싫어졌으면 싫어졌다고 말로 해. 이런 식으로 사람 무시하며 밀어내지 말고."
"그건 틀린 억지 같은데요?"
"뭐?"
"설령 내가 선 보고 결혼을 하더라도, 숙희씨, 여기 더 계시고 싶고 또 계속 계셔야 하면, 계속 계세요. 어차피 저는 살림집을 따로 차리기로 했다고 말했잖아요."
"결혼한다며. 결혼해서 부인이 생기는데, 내가 여기에 어떻게 있어."
"그럼, 여기 계속 계시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네, 뭐."
"뭐?"
"이제 약발이 쫌 들어가나보네..."
"그럼..."
"녜! 일년 참고 제가 또 프로포즈 하는 겁니다! 이번에 또 거절하면, 진짜 선 보는 여자랑 결혼해 버릴려구요! 저도 대비를 해야 할 거 아녜요? 세월은 자꾸 가는데."
"부모님은 어떡하구?"
"우리가 언냅니까? 부모님 허락이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집에서 외아들이잖아."
"그게 무슨 문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