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은 진희를 만날래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어디를 잠깐 들렀다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어서 말을 섞게 되었는데.
영진은 진희가 병선에게서 조금씩 들었다는 운진에 대한 얘기를 좀 듣는 기회가 되었다.
원래 그 집안이 한국에서 버스를 여섯대 가졌던 부자래.
지금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댄다.
그걸 전혀 내색 안 하고 부모님은 청소차 타신대.
영진의 귀에는 돈 얘기가 안 들어온다.
돈은 우리집도 좀 있어.
근데 운진씨가 그래서 가게도 샀다 팔고 화원도 하고 그러나.
울 아빠 엄마는 그 집 부모님이 청소차 탄다니까 깔보고...
"넌 좋겠다! 그런 돈 많은 집 남자하고 연애해서." 진희가 놀림 반 진담 반 같이 말했다.
"그러게 너나 잘 해보지 그랬니?"
"지금이라도 대쉬하라면 해." 진희가 아주 자신있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저번 날 오운진과 소파가 내려앉게 격렬한 셐스를 가진 것이 기억에 아직도 새로워서 그랬다.
"너를 인제 다 아는데?"
"그게 무슨 문제야! 너나 아직 처녀니까 이것저것 가리지."
"이게!"
영진은 진희가 너 처녀 어쩌고 놀리기만 하면 이제는 화가 난다.
그렇다고 즉흥적이나 충동적으로 셐스를 알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미스타 오에게는 아직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않는다. 아무래도 진희와 같이 잤을 것 같다는 상상만 하면 화가 난다.
어떻게 알아내지?
진희 저거한테 물어보면 대번에 그렇다고 대답할 텐데. 그러면 내 자존심은 뭐가 되구.
미스타 오한테는 내가 넘겨짚고 조심하라고 경계했는데.
'운진씨가 결정적인 사인만 보여주면... 적극적으로 나가겠구만.'
영진은 이제 집을 맘대로 드나든다. 집에 있다가 잠깐 볼 일 보러 나간다 해도 전처럼 강제로 못 나가게 하거나 꼬치꼬치 따져지지않고 이젠 전화도 맘대로 쓴다.
영진이 운진과 아주 길게 통화하고 있으면 전화 써야 하는 이가 그녀의 방문을 조심히 노크해서 잠깐만 쓰고 나면 또 통화해라 하는 정도이다.
영진은 그녀의 부모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를 궁금해 하지만 구태여 알고자 하지않는다.
오빠에게도 묻고 싶지않다.
그리고 이젠 운진씨를 만나는데 오빠를 대동하지않는다.
그렇게 영진 혼자서 운진에 대해 잔뜩 무르익어 가는데.
추수감사절 특별 예배가 성황리에 열렸다.
그 날은 꼭 교회 신도 뿐만 아니라 명절을 기해서 친척이 놀러왔거나 멀리 갔다가 임시 귀가한 자녀들도 따라 나오고 해서 본당은 발 들여놓을 틈 없이 빼곡히 찼다.
운진은 연습실에서 진희의 두어번 건반 두드림에 베이스 파트를 금방 터득했다.
"진짜 재주는 타고난다니까요?" 진희가 진정으로 감탄해서 한 말이다.
그런 다음 벌써 두달째에 걸쳐 연습해 오는 테너 파트 순서에서 진희가 미리 짜증을 냈다.
진희가 화장실 다녀온다면서 나갔다가 영진을 데려왔다.
영진은 제법 화사하게 차렸다.
"거기 침례교회는 추수감사절 같은 거 안 해요?" 운진이 농쪼로 말했다.
"몰라요. 난 그냥 이리로 왔어요."
"오빠는 잘 지내요?"
"또 본병 도졌어요."
"녜?"
"이거요."
옆에서 진희가 징징징 우는 흉내와 위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는 시늉을 했다.
영진은 진희의 흉내내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딱 저래요."
진희는 사실 영진을 약올리려고 그런 흉내룰 냈다.
영진은 하기 힘든 말을 진희가 대신 해 줘서 고맙다.
운진은 이해 못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젊은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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