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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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18. 06:51

   "저는 영진이가 다시 예전의 영진이로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수영이 부모 앞에 다소곳이 서서 말하고 있다. "아버님이 뭘 보셨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안목에 뭐가 못 마땅하시면 그렇겠지요. 보지 못 하는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영진이가 옛날처럼 다시 남과 말하고 소리내어 웃기도 한다는 겁니다."
모친이 영진의 방쪽을 본다.
   "저는 그 친구를 자주는 못 봤습니다. 영진이가 혼자 나가기 뭐하면 저를 데리고 나갔는데, 보면 볼수록 속이 꽉 찬 남잡니다. 나이 터울은 저랑 비슷한 듯... 한데. 벌써 자기 앞가림 다 해 놨고. 화원이 딸린 땅을 소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영의 말하는 얼굴에 스스로 감동의 빛이 서린다. "부모의 보는 눈과 자식에 대한 마음이야 저희들이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저희들은 코 앞만 보는 어린애들 아닙니까."
   저는 오로지 제 나이 터울의 남자를 제 수준에 맞춰서 보고 느낀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빠로서 여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에 답답했습니다. 
   무능력하고 게으른 제가 해 줄 게 있다 해봐야 어쩌다 라면 한 그릇 끓여서 나눠 먹는 것?
   영진이는 이번에 산에 갔다 오더니 백팔십도 달라졌습니다. 
   오늘도 보십시요. 일종의 난리가 난 건데. 
   다른 때 같으면 영진이가 제 딴에 뜯어 말려보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부모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면 언짢으시겠지만, 또 죽는다고 해서 식구들을 초긴장시켰겠죠. 
   오늘 보셨듯이, 영진이가 대신 사과한다고 하잖습니까. 
   그만큼 미스타 오란 존재가 이제는 영진이의 마음에 가득 들어찬 겁니다.
   영진이의 눈을 보십시요. 아버지. 어머니.
   직접 키우셨으니 더 잘 기억하시겠죠.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 하던 영진이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앞에서 감히 남자를 바라보던 그 똘망똘망한 눈. 꼭 닮지 않았습니까? 
겁 먹은 눈빛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그 남자를 따라나갈 듯이 결연에 찬 눈...
부친이 아내를 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니 말이 뭔데. 그냥 내버려 두라구?" 그들의 모친이 말했다.
   "그 미스타 오란 친구가 영진이에게 한 말, 기억하십니까? 앞으로 더 많은 난관이 올 텐데. 이 정도 일 갖고 울지말라 한 말."
   "..."
   "그 말은 말이죠. 남자인 제가 들어도 혹할, 남자가 여자에게 꼭 해 줄 말 같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왜 할 줄 몰랐을까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으면, 한국에 걔를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걔가 혼자 감당하도록 저는 구경만... 저는 비겁했습니다."
   "..."
   "말이 빗나갔는데요... 영진이는 미스타 오의 그 말을 듣고 금방 웃었습니다. 힘이 된 거죠. 만일 앞으로 아버지 어머니께서 영진이를 야단치시고 해도, 아마 영진이는..."
부친이 손을 내저었다. "알았다. 다시 생각해보마."
   "네."
   수영이 크게 숙여서 인사했다. "아버지. 어머니. 안녕히 주무십시요."
   "그래."
   "수영이 너두."

그 날 밤.
수영이 제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는데.
   "오빠?" 하며, 영진이 살금살금 들어섰다.
   "너 안 자고 뭐 해."
   "오빠한테 고맙다는 말 하러 왔어. 고마워, 오빠."
   "고맙기는, 뭘."
   "오빠가 내 편이 되어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어."
   "나한테 고마워 할 게 아니라, 그 미스타 오란 친구, 잘 사귀어라. 보통 사내 아닌 것 같다."
   "아빠 엄마 아직도 자격지심인가 봐, 오빠."
   "세상 좁다, 영진아. 언제고... 우리... 탄로난다."
   "미국에서 아직 우리 아는 사람들 안 만났잖아, 오빠."
   "아니. 미국 말고도 세상... 좁다, 영진아."
   "그래서 엄마 아부지 교회 같은 데도 안 가잖아."
   "우리도 교회 발 끊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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