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 남편 어디 갔느냐고 묻는 손님들한테, “He’s busy. (그는 바쁘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매일 같이 돌아가며 각종 세일즈맨들이 가게에 들이닥치는 것을 몰랐던 영란은 그들이 정중히 권하는 대로 모두 주문을 했다. 그리고 은행잔고를 알아보지도 못 하고 그들이 내미는 청구서마다 수표를 끊었다.
어쩌다 가끔 찍어본 복권을 정작 하루 종일 붙어보니 실수투성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고 줄에서 기다리다가 돌아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호는 계산대에 하루 종일 붙어서 한 손님 건너 몇불씩 훔쳤다. 그 날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써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영호는 누이가 복권 판매대에서 쩔절매든 지 말든 지 술칸 계산대만 잡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로서리칸에서 일하는 청년도 3일째 되고는 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 날 캐리아웃쪽의 아주머니가 영호의 음담패설을 핑게로 그만 두겠다고 전해왔던 것이다.
영란은 울다가 남편을 욕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동생 영아를 때려 죽인다고 위협해서 사라지게 한 영호를 욕했다. 그녀는 영호가 그렇게 수 쓴 것을 몰랐다. 여동생 마저 없게 하면 가게는 영호 맘대로 휘두를 수 있고, 챈스다 싶어 돈 좀 갈취하려는 속셈인데 영란은 복권 기계에만 매달려서 뭘 돌아보고 살펴볼 엄두를 못 냈다. 되려 영호가 한가하면 와서 가르쳐 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친정 아버지라도 부르면 나으련만, 그도 모친과 대판 싸운 후 나가고는 이틀째 무소식.
친정 엄마는 불러다 놔봐야 오히려 짐 된다.
영란은 처음에는 남편을 욕하며 이를 갈았다. 어디 들어오기만 해라!
그러다가 사흘째까지도 난리 구석을 치다 보니 남편이 수퍼맨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날 영란은 저녁 일찍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갔다.
딸 둘은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 엄마를 보자마자 배고프다고 신경질들을 부렸다.
“느그 먹고 싶은 대로, 피자를 시키든지, 차이니스 푸드를 시키든지, 니네 맘대루 해라!”
영란은 고함을 지르고 방으로 가서 침대에 쓰러졌다. "영호야!"
영호는 속이 뜨끔하여 대답은 않고 누이가 있는 방 문을 열었다. "뭐?"
"애들 뭐 시켜줘. 돈 내 지갑에 있어."
"그러지."
영호는 누이의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차이니스 음식을 배달시키고, 주머니에서 하루 종일 훔치면서 쑤셔넣은 돈을 꺼냈다.
대부분 급한 대로 쑤셔넣은 일불짜리에 간혹 오불짜리도 떨어졌다.
‘씨발! 제법 육십불이네, 그럭저럭?... 낼부턴 무조건 백불씩 먹어야겠다! 지가 알게 뭐야!’
영호는 누이 정도면 얼마든지 속여 먹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채 씻지도 못하고 누웠던 영란은 밤 늦게 돼서야 기운이 돌아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아랫층으로 내려와 보니 리빙룸 주위가 온통 피자를 먹고 난 뒤로 어수선했다.
“영호야!” 영란은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댔다.
대답이 없다.
‘이 새끼가 어딨는 거야!’
그녀가 방마다 뒤져보니 영호는 남편이 쓰던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었는 지 영란이 방문을 여니, 그가 서둘러서 뭘 감추는 시늉을 했다. “노크도 안 하고!”
“너 이 방에서 뭐해, 이 쌍놈아! 여긴 내 남편 방이야! 당장 나가, 쌍놈아!”
“아, 왜 욕을 하고 지랄이슈?”
“뭐, 이놈아! 엇다대고, 지랄? 너두 이젠 막 가냐! 빨리 못 나가!”
영호가 그 새 주머니에 무얼 다 쑤셔넣고 뭉기적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영란은 있는 힘을 다해 동생을 노려봤다.
“영아년 잡히기만 해라. 내 이 년놈을 작살낼 거다!”
영호의 그 말에 영란은 때 아니게 웃음이 나왔다. “입 닥쳐, 이놈아! 너 같이 주둥아리로만 별르는 놈은 아무도 안 무서워 해, 알어? 이불 속에서 혼자 활개치는 놈 주제에, 입만 살아서.”
“아니, 날, 씨발, 뭐로 보고 그 딴 소릴 하는 거야!”
“정작 니가 쌈을 거니까, 챌리아빠가 너 무서워서 벌벌 떨대? 응? 더 터진 놈은 너야! 입술이 다 터진 주제에. 넌 챌리 아빠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 이놈아!”
그러다 영란은 아랫배에 갑작스런 강한 통증을 느끼고 멈춰야 했다.
그녀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이상하다! 먹은 것도 없이... 체한 게 아닌가 본데.'
영란은 계단 난간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 했다.
허리를 펴려고만 해도 배에 통증이 왔다.
왜 이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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