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마잌과 서양장기를 두었다.
조카를 이기려던 것은 아니었고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해서 눈으로만 두었는데 세번 모두 삼촌이란 이가 이겼다.
“더 할래?”
“Nah. You’re too good at it. (아니. 삼촌이 너무 잘 해요.)” 조카애는 머리를 저었다.
삼촌이란 이도 계속 이기기만 하니까 흥미가 줄어들었다. “You got to use bishops. You lose them too easily. (비숖을 잘 써. 넌 그걸 너무 쉽게 잃어.)”
“Okay. What’s on TV... (오케이. 테레비에서 뭐 하나.)” 마잌이 티비를 켰다.
운진은 소파 위에 누웠다. 그리고 눈만 돌려 TV를 쳐다봤다.
운서가 사과 몇개를 접시에 담아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사과 깎아 줘?”
“그러슈.”
운진은 누이가 깎아놓는 사과를 이쑤시개로 찍으며 말을 건넸다. “설이하고 엄니가 늦네?”
“엄만 시장 보면 마냥 고르고 또 고르고. 설이가 죽을려구 그래.”
“노인네가... 남 괴롭히는 성질은 돌아가셔야 죽지.”
“죽으면 어차피 승질두 죽으니까.”
남매는 클클클 웃었다.
“애들 아빠는 연락 와요?”
운진은 그 말을 힘들여 물었다. 이제 곧 나도 그 짝 날 판이다...
“민이 생활비 주러 매달 왔었는데, 지난 달에는 부쳤더라구. 그래, 마잌이 받았다고 전화를 하니까. 어떤 여자가 받더래. 우리 마잌 좀 니가 말 시켜 볼래? 나, 쟤, 불안해서 죽겠어.”
“저 만하면 착한데, 뭐. 그냥 놔두는 게 어떤 땐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운진은 사과조각을 콱 찍었다. 체! 나도 지금 이혼하려는 판에 누가 누굴 위로해!
마잌이 샤워를 마치고 다시 왔다. “사과, 내 꺼두 있어?”
“음, 자, 이거 먹어라.” 운진은 접시를 가리켰다.
“아니, 내 꺼.” 마잌이 당황했다.
“삼춘 껀 노나 먹어도 돼.” 어미가 좋게 말했다.
마잌이 삼촌을 어려워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You sure? (확실해요?)”
“Go ahead! (주저말어.)” 운진은 접시를 미는 시늉을 했다.
그제서야 마잌이 손으로 사과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삼촌이라 하지만 어려서 가끔 보고 크도록 왕래가 없으니 거북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설이가 양 손에 비닐 봉지를 들고 들어섰다. “마잌! 좀 도와줘!”
서니의 그 말에 마잌이 두말않고 일어나 나갔다.
‘자식, 생긴 거에 비해서 착하네. 하긴 저희 둘이 컸대며?’ 운진은 마잌이 기특했다.
그의 모친이 빈 손으로 들어서며 에잇, 에잇! 하고 뭐가 못마땅한 지 투덜댔다.
‘흠, 노인네, 두 자식이 이런 꼴 되니까 보기 싫으신가 보군?’
민이는 한번에 여러 봉지를 들여왔다.
봉다리가 많은 것이 미워도 자식이라 뭣 좀 해서 먹이려는 어미의 뜻이 담뿍 담겼다.
설이가 마지막으로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와아! 삼춘 차, 증말 좋다아!”
“그러냐?” 운진은 빙긋 웃었다.
노친네가 방바닥에 털퍼덕 앉으며 아들에게 대뜸 욕을 시작했다. “넌 배알도 없는 병신이냐, 이놈아? 그 빌어먹을 년한테 싹 다 주고 맨몸으로 나와? 죽도록 품팔이 해서, 어떤 미친년 밑구멍에다 다 바쳐?”
운진은 노친네를 물끄러미 바라다 보기만 했다.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어. 젠장... "Mike! Let me see your phone. (마잌! 네 전화기 좀 보자.)"
그가 나갈 기미를 보이자 노친네가 밥 할 건데 어딜 나가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니네들도 따라 나올래?"
운진은 조카 둘을 데리고 차를 시내의 한국 음식점으로 몰았다. 조카들을 먼저 들여보내서 자리를 잡으라 하고, 운진은 마잌에게서 빌린 셀폰의 심 카드를 바꾼 후 영아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영아는 바로 그러나 조심히 응답했다.
운진은 음식점 안을 슬쩍 들여다 봤다.
혹시 조카애들이 엿보나 해서... "내 어디 방 잡으면 또 연락할께. 일단... 만나고 싶어."
"그러세요."
"새 전화기 빼는 대로 다시 연락..."
'[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1 12-5x115 (0) | 2024.08.11 |
---|---|
pt.1 12-4x114 (0) | 2024.08.11 |
pt.1 12-2x112 (0) | 2024.08.11 |
pt.1 12-1x111 불륜과 사랑 (0) | 2024.08.11 |
pt.1 11-10x110 (0) | 2024.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