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가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언젠가 언니가 채리 어렸을 때 데리고 어디 며칠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혹시 기억나세요?"
"..."
운진은 기억 안 난다도 아닌 모르겠다도 아닌 애매모호한 도리질을 했다. "계속해 봐..."
"형부는 학교 수학 여행인 줄 아셨지만, 사실은 채리를 제 아빠에게 주러 갔었던 거였어요."
"..." 운진은 기억을 짜내보려 했다.
"전 그 때 언니가 채리를 거기다 두고 올 줄 알았는데, 채리가 죽는다고 울어서 도로 데려왔대요. 걔 아빠는 원래 한국에서 화가였는데, 버지니안가 어디선가 사이딩 헬퍼 했대요. 그래서 그런 지 채리가 그림을 참 잘 그리잖아요. 미들 스쿨 때 그림 그린 거 뽑히기도 했고."
"..." 운진은 어떤 그림을 말하나 기억을 더듬어봤다.
"언니는, 이모 말에 의하면, 어려서 부터 색을 밝혔대요. 사실대로 말하면, 아니, 언니가 사실대로 말한 거라면, 언닌 벌써 열여섯살 때 우리 동네 옆집에서 하숙하던 어떤 대학생하고 첫 정을 나눴대요. 언닌 벌써 열여섯살에 이미 열아홉살 짜리처럼 몸이 발달해서 누구도 의심을 안 했대요. 그 방 장판이 뜯어지고 그 학생은 그 하숙집에서 내쫓겼는데 후에도 틈틈이 몰래 찾아와서 뒷뜰이나 산에서 정을 통했대요."
"..." 운진은 환한 햇살 아래 남녀가 풀밭에서 셐스하는 광경을 떠올려 봤다.
"그 대학생이 짐작하시는 대로, 채리아빠예요. 미국 와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났어요. 그 남자는 아빠가 싫어했어요. 만일 언니와 결혼하면 가게 맡기기도 싫어했고. 그래서 언니는 그 화가를 잡아 놓으려고 임신을 했어요. 그러다가 그 자의 부인에게 들켰어요. 그럴 즈음 형부를 만났죠..."
"..."
운진은 영아와 같이 자쿠지에 들어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타이밍...
그러다가 영아가, “주무세요?” 하고, 묻는 바람에 그는 눈을 떴다.
그가 상체를 바로 하며 출렁거리게 만든 물이 영아의 풍만한 가슴에서 맴돌았다. 그녀의 탱탱한 젖가슴은 물기에 젖어 마치 사기 그릇처럼 반짝거렸다.
뜨거운 물기운에 상기된 얼굴로 영아가 미소를 지었다.
“처제.”
운진은 헛기침을 했다. “우리, 처제 말대로 다른 주로 가자.”
“네.”
“미리 말해 두는데, 처제는 한창 피어오르는 삼십대 초반의 젊음이고, 나는 이미 오십을 바라보고 황혼길로 접어드는데. 무슨 말인가 하면, 처제가 한창 성에 눈을 뜨고 익어가려 할 무렵 나는 쭈그러드는 상황. 처제의 성적 욕구를 충족 못 시켜줄까봐 걱정이 되네?”
“무슨 그런 내스티(Nasty: 야한)한 말씀을!” 영아가 곱게 눈을 흘겼다.
“농담 아냐. 처제와 세번인가 네번인가 잤는데, 처제도 보통은 아냐.”
“에게게!”
영아가 운진에게 물을 끼얹었다. "저한테 셐스에 대해 눈 뜨게 한 분이?"
“우리 다 주고 우리끼리만 딴 데 가서 살자. 내 아무 일이건 할께.”
“저두요.”
영아가 자리를 옮겨 운진의 곁으로 갔다.
둘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키쓰를 했다.
다음날 영란은 도저히 일어날 기운이 없어 영호만 혼자 내 보냈다.
영호가 가게로 나간 지 삼십분도 안 되어 전화가 걸려왔다.
가게에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정말 아무도 안 나왔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그만들 둔 거냐고, 영호가 역정을 냈다.
영란은 영호한테 문 닫고 들어오라 하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챌리가 문을 가볍게 노크하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뭐니, 너 학교로 안 가고. 엄마 아퍼.” 엄마란 이는 상을 찡그렸다.
“Where is dad? (아빠 어딨어?)”
“몰라. 그리고 니 아빠 아냐! 알잖아.”
“I don’t care! (난 상관없어!)”
“얘가!”
영란은 윗몸을 일으키려하다가 도로 누웠다. 그러다가 그녀는 흠칫 놀랐다. 아까 입덧을 하느라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걸 큰애가 보던 모습이 기억났다.
열아홉 살이면 벌써 알건 다 알 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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