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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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1. 03:53

   “설이 이번에 하는 일 어때? 일하기 좋아?” 
운진은 조카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 여자 얘긴 말고...
   “좋아요.”
   “이번엔 진득히 붙어 있어라. 자꾸 그만 두지 말고.”
   “네. 그, 아, 아녜요.”
조카가 말을 얼버무리는 걸 운진은 묻지 않았다. 
느낌에 숙희에 대해 말하려다가 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지금 싯점에서 그녀의 소식을 들어본 들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지금 하려는 이혼은 아내의 부정 때문인데, 여기서 숙희의 이름을 올리면 미리 작정한 것처럼 몰릴 수 있다. 그는 영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다. 챌리가 친딸 아니고 아내가 조가와 고정적인 통정을 했다고. 
하지만 설이는 삼촌이 정말 숙모와 헤어지려는 것인 지 그걸 물으려다 말았다. 인사과 부사장 아줌마가 삼촌에 대해서 묻고 삼촌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못내 궁금했다. 만일 그 아줌마가 남편이 있다면 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아무도 안 온다 하더라도 남자의 사진을 다 보이게 놓을 리가 있을까 의아스러웠고, 그 아줌마를 본 그 날 삼촌에게 말했더니 갑작스레 이혼말이 나오는 것이 걱정되고 불안했다.
   운진은 조카들과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일단 누이의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다.
운진은 남자애 조카더러 담배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힘들여 끊은 담배를 이까짓 일로 다시 피우는 나약함을 겉으로 나타내기 싫었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의 모친이 소파에 앉아 한참 노려보고 있다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이대루 그냥 그 년한테 한입에 털어주고 마는 거냐?”
   “무슨 상관이슈?” 
운진은 무시하는 투로 대꾸하고 소파에 누우려했다. 그러니까 마치 아들이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우려는 장난을 하려던 셈인데 노친네가 아들이 누우려는 걸 확 밀었다. "그냥은 못 누워!"
운진은 벌떡 일어났다. “그래도 여기를 혈육이라고 찾아온 내가 넋빠진 놈이지!”
그는 그 말을 남기고 그 아파트를 나왔다. 
   핑게가 좋았다. 아니면, 왜 별거를 시작하는 지 말해야 했다. 우선적으로 큰애가 친딸이 아닌 것과 아내의 외간남자와의 통정과 아내에 못지않는 그의 처제와의 불륜 등등.
밤낮의 기온 차가 그 새 심해졌는지 밖은 선선했다.
   "삼춘! 마잌 셀폰!" 설이가 쫓아 나왔다.

   운진은 아무 고속도로나 타고 북쪽으로 한참 가다가 도심지를 벗어난 출구로 나가 처음 나타나는 모텔에 들었다. 
그는 간판도 보지 않고 무조건 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인도 계통의 남자가, '야, 야, 쇼, 쇼!' 하며 컴퓨터를 두드렸다.
   ‘어디서 본 놈이네? 이 자식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우리 가게 단골 손님인가?’
규칙상 현찰을 안 받는다 해서 운진은 카드를 긁었다. 
그리고 새삼 모텔 이름을 보니 전에 영아랑 들었던 그 곳이다. 
   ‘어쩐지 들어오며 길이 눈에 익더라니... 제기, 십할!’
   김유신 장군의 말이 달리 그 집으로 갔겠어? 흥, 체!
운진은 후미진 위치의 방으로 달라고 했다.
   “I wanna give you Jacuzzi suite. (자쿠지가 있는 방으로 줄께.)” 남자가 윙크를 했다.
운진은 모텔 라비에 있는 공중전화로 영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아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갈께요.” 하고, 대답했다. 
조금 전에 연락하겠다고 하니 대답한 것과 그 먼젓번에 같이 도망가자고 할 때와 다른 분위기였다.   
그 사이 운진은 샤워하고, 음식도 배달시켜 놓고 TV를 틀고 있었다.
   영아는 통화한 지 근 한시간 만에 왔다. 그녀에게서 향수 내음이 풍겼다. 
영아는 들고 온 가방을 문간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운진에게 달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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