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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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7. 05:47

   공희는 집에 가면 아마 봉투에 든 돈 액수를 보고 놀랄 것이다. 
보통 때처럼 이삼천불이 아니라 이날은 오천불을 줬다. 
숙희는 그 나이 되도록 혼자 살면서 돈을 모으려고 아둥바둥대보니 의미가 없었다. 직장생활 이십 몇년에 돈은 대략 오십만불을 모았는데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정아 앞으로 달아 놔 줄까… ‘
아홉살짜리가 어찌나 영특한지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그 집은 조그만 차에 여섯식구가 어떻게 타는지 어쨌거나 잘 다닌다. 
이날 따라 동생에게 차를 줘 버릴까 하는 충동이 생겼다. 정아가 좁아 터진 차 안에서 오빠들이랑 끼어 자고 있을 것을 상상하니 생각만 해도 안쓰러웠다. 
숙희는 전화기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공희는 다음날 일요일에 전화했다. 
   “으응. 난 언니가 혹 실수했나 하구, 난 놀래서 잠도 못 잤어.”
   “이번엔 놀아도 정아 보러 못가니까, 니가 알아서 옷 사 주구 학용품 사 줘. 내 딸 아무렇게나 입혀 보내지 말구, 엉?”
   “응, 알았어, 언니. 아유, 정아는 좋겠네.”
   “내 딸이니까.”
   “그래, 언니. 아유, 샤핑쎈타 미어지겠다. 마지막 날이라.”
   “오늘 일요일이야. 일찍 닫는다, 얘.”
   “응, 알지, 그럼.”
   “그리고, 엄마한테 돈, 나 한테서 받은 거 얘기 하지마.”
   “으응. 그래, 알았어, 언니.”
공희의 대답이 우물쭈물하는걸고 봐서 이미 말한 모양이다. 아니. 
이미 엄마에게 얼마 정도 뜯겼을 것이다. 게다가 아빠에게도 뜯겼을지 모른다.
아빠이기나 하면...

   지난 6월 중순에 여름 방학을 시작하면서 정아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올 에이(All A)! 이모, 나 올 에이야!”
숙희는 자기 자식이 올 에이를 받은 것처럼 회사 동료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그날 동생네 식구를 모두 나오라 해서 저녁을 실컷 사 먹였다. 워낙에 이모가 정아를 예뻐하는지라 다른 애들은 아예 질투도 안 한다. 
처형이 정아를 물고 빨고 하는데 싫어할 애비가 있겠나, 동생의 남편은 그저 미안해 한다. 
공희만 애 버릇 나빠질까봐 은근히 견제한다. 
부모는 그저 그렇고 볼품 없는데 정아의 옷들이 하나 같이 유명한 고급품이니 학교에서 어찌 함부로 안 한다. 뭔가가 뒤에 있나 하는 눈치이다. 
백인 엄마들이 정아의 옷을 슬쩍 훔쳐보고는 혀를 내두른다. 
티셔츠이건 치마이건 바지이건 하나같이 비싼 것들이다. 그것도 어쩌다 하나 주워서 매일 똑같은 것을 입은 게 아니라 매일 바꿔 입고 오는 옷들이 모두 그렇다. 그렇게 기를 살려선지 아이는 공부도 잘 한다. 
그래서 부잣집 백인 유태인들이 정아를 돌아가며 초대한다. 그리고 뒤에 이모가 어떤 큰 회사에서 중역으로 있는 것을 알고는 더욱 가까이 한다. 
   그러니까 거의 일년 전 정아가 4학년 올라가는 첫날 숙희가 참관했었다. 그녀가 내리는 차가 싯가로 십만불을 홋가하는 벤즈에다 정장을 빼입은 맵시를 보고 다른 학부형들이 누구인가 보려고 몰려들었다. 
눈에 띄게 고급으로 입은 정아가 이모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 이후로 학교에 소문이 쫙 퍼졌다. 
부자인 이모가 키우는 애라고 소문이 나고 자연히 정아의 위상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의논할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숙희에게로 전화가 온다. 
비상연락으로 적어낸 이모에게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연락한다. 
그러면 숙희는 꼭 보답으로 학교에 학용품을 배달시키거나 교장과 담임 앞으로 선물권을 부친다. 그렇게 해서 조카가 학교에서 기가 안 죽도록 은근한 위세를 넣는 것이다.
숙희가 그러는 것은 그녀가 장호원에서 자라던 시절 겪었던 충격 때문이다. 그녀가 일곱살 되어 국민학교를 들어가서야 자신은 머리 자른 소년이 아니라 치마를 입고 등교해야 하는 가시나인 줄 알았다.
그녀는 계부 아닌 계부의 이상한 취미 때문에 그 때까지 사내아이처럼 입었어야 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조카 정아는 여자처럼 입히고 여자처럼 키우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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