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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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8. 03:40

   그러니까 근 이십년 전 운진은 숙희와 오션 씨티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 뒤, 3년쯤 지나 그 때는 숙희가 그를 포기하고 다른 선남을 찾았으려니 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어떤 여인과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한번 동침한 후 책임을 강요하는 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여자네 집에서 경영해 오는 술가게를 맡았다. 
여자네 집은 딸 둘에 아들 하나가 있는데, 아들이 워낙에 칠칠치 못했고, 부부가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누구든 그 집 사위로 들어오면 가게를 맡아야 했었다. 
   결국 머슴이나 진배없었다. 화원이나 했지 술장사에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는 운진은 기계처럼 아침 9시까지 나가서 밤 11시까지 종업원 둘을 데리고 일주일에 6일을 일했다. 
   장사는 저절로 잘 됐다. 
아내는 결혼 때 이미 임신이었고, 팔삭동이 딸을 낳았다. 
삼년 후 둘째아이도 생겨나고 더 큰 집으로 옮겼다. 
차도 고급으로 타고 다녔고 돈도 그럭저럭 많이 모였다. 
그러나 부부사이에 애정은 없었다. 
   몸은 아내라는 여자에게 있고 마음은 늘 숙희를 동경했다. 
그런 생활이 오래 갈리가 없었다. 말로만 그리고 겉보기에만 부부처럼 행세하지 그는 아내와 각방을 쓴지 오래 되었다. 
식구가 밥상에 같이 앉아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한테 양보해 가며 씻고 화장실을 쓰고 하다 보면 여덟시쯤 된다. 그러면 그는 바로 나간다. 
어차피 그 집에는 아침이란 게 없었다. 
   그는 가게로 가는 길에 도넛샾에 들러 커피 한잔과 도넛 세개를 사는 게 고작이었다. 늘 단골이라 차례가 되면 그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또 점원도 묻지않고 커피에 크림 설탕을 넣고 도넛도 늘 먹는 세가지를 골고루 봉지에 담아 건네진다. 금액도 늘 같으니 얼마냐고 물을 필요도 없고. 
그것은 마치 숙희도 은행건물 내의 까뻬떼리아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과 흡사...
그는 점심은 으례히 배달시켜서 먹는다. 골고루 돌아가면서. 
오늘은 또 뭘 먹을까 늘 같은 고민을 한다. 
저녁도 가게에서 해결한다. 
   그래도 처음 신혼 때는 집에서 가게로 밥이 날라져 왔었다...

   영란은 친정 식구들을 쫓아냈다.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펄펄 뛰는 친정엄마를 쌩난리를 쳐서 밀어냈다. 
남편의 방을 처음처럼 보이게 대충 정리하고 사진을 제 자리에 꽂아야 하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영란은 사진을 들고 어느 책칼피에서 나왔을까 하고 책장을 가까이서도 살펴보고 멀찌감치서도 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방청소를 해 주다가 우연히 떨어진 걸 발견했다고 할까?’ 
남편은 정돈하고 사는 남자이다. 
남편은 틀림없이 그 책을 알 것이다. 
남편이 그 사진을 아내 몰래 들여다 봤을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일단 사진을 제 자리에 꽂아놓고 차후에 기회를 보던가 해야지 섣불리 건드렸다가 남편의 입에서 안 좋은 소리라도 나오면, 거기까지 상상하고 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서 그런 상상을 애써 떨구었다.      
   정 없이 살지만 남편은 남편이다. 
만일 집안에 의논거리가 생겼는데 친정식구들끼리 법석만 대고 결론이 안 나면 영란은 남편에게 묻곤 했다. 
남편은 깊이 생각한 후 그의 의견을 내놓는데 열이면 열 다 정확했다. 그래서 친정엄마도 혹간 문제가 생기면 사위한테 직접은 말을 못하고 딸을 시켜서 그의 의견을 물어보라 할 때가 종종 있다. 
사위는 장모를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사위는 장인과는 어울린다. 
사위와 장인이 명절 때 같으면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밤새 대작도 한다.
장모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가 이번에 사위가 말도 없이 어딜 갔다고 했을 때 이때다! 싶었는지 양팔을 걷고 덤벼 들었는데, 딸이 맘이 변해서 도로 다 쫓겨났다.
   영란은 이렇게 할까 연구했다.
   ‘차라리 화가 나서 뒤지다가 발견했다고 할까? 그래, 차라리 깨놓고 말하자. 당신이 수상해서 뒤졌어. 이게 나옵디다. 옛 애인이요?’ 
어쩌면 그렇게 정면돌파를 해야 남편은 반응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안다고 하는 남편은 직설적으로 대해야지 빙빙 돌리면 완전무시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길히 뛰어야 한다.
그런데 영란은 영 자신이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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