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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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8. 03:52

   알파벹 K자로 시작하는 이름의 태풍은 북 캐롤라이나 주 해안 지방에 큰 피해를 남기고 내륙으로 들어와서는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뀌었다. 
그 진로가 북으로 휘어지면서 폭우를 동반한 티-스톰 정도로 기세가 꺾일거라고 TV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걸 보며 운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저거 실수하는데?” 
   “뭔 실수를 하는데?” 계란 후라이를 하는 영란이 돌아다봤다.
   “이리 오지? 같이 먹자구.” 운진은 옆의 빈 의자를 툭툭 쳤다.
영란이 눈을 곱게 흘기고는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들을 접시에 담아 스토브에서 식탁으로 옮겨왔다. 
   “갑자기 좋아하는 척 하고 있어. 누가 이쁘달까봐?” 
   “처제는, 벌써 나갔나?” 운진은 벽시계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몰라, 왜! 아, 키미 학교 태워주러 갔다, 참!”
   “그냥 가게로 간대, 집으로 온대?”
   “몰라, 왜!”
   “으응. 내가 좀 늦게 나가도 되나 해서.”
   “늦게 나가요. 내가 영아한테 가게로 바로 가라고 전화할께. 근데, 왜?”
   “으응, 당신이 이뻐서.” 
  “ 나 이쁜거 인제 알았어? 눈이 이제 제대로 돌아왔나부지?”
   “눈은 아직 괜찮소.”
   “근데, 자기, 계속 그 방에서 잘 거야?”
   “쫓아 보낼 때는 언제고, 왜 물어보시나?”
   “얼씨구? 이게 씨, 봐 주니까 뭐 어째?”
   “이 사람이! 남편보고 이게 씨가 뭐야!”
   “그러는, 넌, 자긴, 쫓아 보내놓고 왜 묻냐가 뭐야!”
   “허, 이 사람이 이젠 뭐, 너?”
   “자기가 나 약을 올리니까!”
   “그래, 내가 또 잘못했소. 말조심합시다.”
   “나두... 근데, 뭐가 실수야, 일기예보?” 영란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저거 그냥 썬더스톰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아냐.”
   “금 뭔데? 당신 말은 뭐야?”
   “새가 안 날어.”
   “새?”
   “응.”
   “아니, 그야, 아이구, 참내. 답답하기는. 바람이 부는데 새가 어떻게 나냐? 난 또 뭐라구.”
   “당신, 흐린 날 새가 높이 날면 내가 그러지, 비 안 온다구. 그랬소, 안 그랬소.”
   “근데, 태풍에 새가 어떻게 날어! 자, 자, 계란이나 더 먹어.” 
영란이 계란 후라이를 남편의 접시에 쏟았다. 그리고는 한조각을 포크로 찍어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영란은 입이 걸어서 말은 험하게 해도 행동은 착착 안긴다. 지금도 말은 험하게 하는데 몸은 남편에게 바짝 다가가서 상반신을 구부려가며 시중을 든다. 티슈로 남편의 입가장자리도 딲아준다.  
운진은 아내의 앞섶이 훤히 벌어져서 들여다 보이는 젖을 구경하며 계란을 받아 먹고는 말을 계속했다. 
   “이 사람아! 하참, 내 말을 통 안 믿네. 새가 땅에 짝 깔리거나 안 날면 그건 아주 굉장히 낮은 저기압이야. 아주 낮은 저기압은 큰 거라구. 왜 남의 말을 안 믿나?”
   “그래? 그래서 저게 뭐 잘못됐는데?” 그러면서 영란은 뒷뜰을 내다봤다. 
비의 강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나는 새가 하나도 안 보였다. 웬만한 비에도 새는 이리저리 날아 다녔는데 오늘따라 하나도 안 보였다.
   “그러네? 어마야. 홍수나면 어떡해요, 여보?”
   “당신 엄마네 집 지하실 새지, 비만 오면.”
   “응.”
   “전화해. 미리 물건들 치워 놓으라고.”
   “응, 알았어요!” 
영란이 발딱 일어나 부엌벽에 달린 전화기로 갔다.
이십년을 살아도 아내는 신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운진은 입맛이 썼다.
영란이 친정엄마한테 신랑의 아이디어라고 누누히 강조하며 지하실을 미리 치우라고 말했다. 
   “우리 부르지 마, 알았지! 미리 얘기했어, 응?” 하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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