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다 먹고 치우면서 설겆이하는 영란에게서 콧노래가 나왔다.
운진은 아내의 움직이는 엉덩이를 보면서, 성격만 고치면 저 사람도 참 좋은 사람인데 하고, 아쉬운 맘이 들었다.
그녀가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운진이 질색하는 것 중의 하나인데 그것만은 전혀 고칠 노력을 안 한다. 여태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이제 와서 바꾸라고 강요를 당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한집안 별거가 시작됐었다.
사진건은 일단 화해를 했고 무슨 바람이 불어 셐스도 가졌는데 얼마나 갈지 두고 볼 일이다.
“야아, 비 정말 장난 아니다, 으응?” 영란이 설겆이를 하며 창 밖에 대고 말했다.
그 때 꾸궁쿵하고 천둥소리가 났다. 천둥소리가 연속적으로 나고 번개도 몇차례 훑고 지나갔다.
“어마야! 나 무서워!” 영란이 물을 끄고는 운진에게로 왔다.
둘은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니.
운진은 얼결에 이층으로 가고 영란은 밖이 무서워 남편이 움직이는 대로 같이 갔다. 이층은 그들이 다 쓰는데 대침실에는 뒷뜰이 훤히 보이는 이중 슬라이딩도어가 두 곳으로 나뉘어 벽 전체를 차지했다.
운진은 벽의 어느 스위치를 눌러 커튼이 열리게 했다. 길게 늘어진 장막같은 커튼이 소리도 없이 양쪽으로 마치 오페라하우스의 막이 열리듯 그렇게 미끄러지며 뒷뜰의 울창한 숲을 보여줬다.
비는 숫제 양동이로 퍼부었다.
“I told you. (내가 그랬잖아.)”
운진은 아내가 듣든말든 그렇게 말하며 유리문으로 가까이 갔다.
비 오는 숲의 절경은 안 본 사람은 그 보는 즐거움을 모른다.
나무들이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비보라가 후려칠 때 번개가 그 위 하늘로 지나가고 곧 이어 천둥이 꾸광쾅하면 비가 더 세차게 쏴아하고 쏟아진다. 비가 나무에 부딪히면 그 물가루가 사방으로 튀고 검은 숲은 번개에 잠깐씩 숨은 시커먼 그 속 안을 보여준다.
영란이 운진의 옆으로 와서 몸을 기댔다.
“자기가 나 모른 척 하는 동안, 응, 이렇게 비오고 천둥치면, 나 얼마나 울었는줄 알어요?”
“당신이 우는 사람이야?”
“얼씨구, 그럼, 난 여자 아냐?”
운진은 아내의 얼씨구 그 말을 듣고 또 속이 끓었다.
도대체 말조심을 안 하겠다는 뜻인지, 무슨 여자가 말을 나오는대로 막 내뱉는다. 친정 엄마한테도 화가 나면 이 여편네 저 여편네 하는데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신혼 때에는 깎듯이 존대를 붙여오던 아내가 이젠 숫제 아랫사람에게 하듯 반말이다.
운진이 듣고 싶었던 대답은 그러엄, 나두 여잔데 무섭지 라든지 또는 그냥 팍 안기면서 뽀뽀를 해달라든지였는데, 그런 상상을 한 자신이 딱했다.
얼씨구 그럼 난 여자 아냐? 그 말은 그 때 나오는게 아니고 또 전혀 잘못된 말이다.
운진은 갑자기 화가 난 사람처럼 몸을 돌려 영란이 몸에서 떨어지게 했다.
전혀 엉토당토 되지도 않은 상상을 하고 실망한 자신이 우스웠다. ‘자식, 바라긴! 하루이틀 사냐?’
“어디 가, 자기. 일 가?” 영란이 따라 붙었다.
“응!” 운진은 쏴부치듯 대꾸했다.
“왜 그래, 또, 갑자기! 화난 사람처럼.”
“화 난 거 아냐!”
“오늘 일찍 들어올 거야, 자기?”
“오늘은 내가 문 닫아야지. 처제가 계속 풀(Full)로 뛸 수 있나.”
“뭐, 공짜루 걔 일 시키나? 그년은 그렇게 부려먹다 시집 보내야지. 나두 했는데.”
아내의 그 말에 운진은 속으로, 그래서 그렇구나아! 했다.
운진은 아랫층으로 내려 와서 신장으로 갔다.
‘친정집에서 딸들을, 다시 말하면 여자를 가게에, 그것도 술꾼들이 술 취해 드나드는 술가게에 젊었을 때부터 내보냈으니 뭘 배웠겠나. 거칠어지고 말도 나오는대로 하지…’
처제란 여자도 서른이 훌쩍 넘도록 짝이 없는데 다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만! 나 보다 열네살 아래니까, 서른여섯? 지저스뻐낑 크라이스트!'
시집도 안 간 여자가 가게에서 스탁 채우는 일을 하는 남자한테도 걸핏하면 쌍욕을 하고 귀찮게 구는 손님에게도 욕을 서슴치 않는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이민 와서 중학교부터인가 다녔다 하고 어딘지는 몰라도 칼리지도 다녔다는 여자가 완전...
언니나 동생이나 생기기는 곱상하게 생겼는데 말이나 행동이 거칠게 짝이 없다. 아니.
동생이 언니보다 몸매는 더 육감적으로 생겼다. 인물도 좀 더 낫고.
밖에서 가족 모르게 막 노는지는 몰라도 혹 가게 일하는 청년에게 역으로 막 구는 건 아닐까?
운진은 신을 신으며 오늘 형록(炯錄)이의 속을 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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