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그 길로 학교를 나와 모친 즉 공희모 다시 말하면 계모의 아파트로 향했다.
큰딸이야 원래 따로 산다. 그녀는 작은딸 마저 내쫓고 그 큰 집을 팔아 은행 융자잔고 갚고 남은 돈을 삼촌이란 자에게 투자했다가 다 날리고 주 정부가 보조해 주는 원 베드룸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면서 공희를 꼬드겨 언니에게서 돈을 얻어오게 한다.
‘내 오늘은 가만 안 둔다! 보자보자하나까 진짜 날 뭘로 보구. 20년 전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 하니까 한푼도 없는 나를 쫓아낼 때는 언제고, 평생을, 뭐 하자는 거야!’
숙희는 옛일이 생각나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속이 끓어 올랐다.
모친이 사는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올 즈음 숙희의 셀폰이 울렸다.
그녀가 손만 움직여서 헬로 하고 받아보니 모친이었다.
“숙희야, 너 마침 잘 온다. 내 너한테 꼭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됐구나야! 어디 오는데?”
숙희는 대꾸없이 통화를 끊고 차를 돌렸다.
그녀는 공희에게 화가 난다. 철딱서니 없는 것이 모친에게 그 새 알렸다.
갑자기 외롭다. 혼자 20년을 살아와도 외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무지하게 외롭다. 아니.
그의 소식을 우연히 듣고 나서 부터 갑자기 외로움을 알았다.
기다림은 희망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은 외로움을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동안 밀려올 때마다 밀어보내고 가슴 깊숙히 쌓아온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한꺼번에 몰려온 무게가 숙희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했다.
그나마 가족이라고 위안은 되기 커녕 오히려 뜯어가려고만 한다.
‘그냥 이대로 탁 고통없이 죽었으면 좋겠다…’
비는 그녀의 마음을 씻어주는 양 원도 한도 없이 계속 쏟아졌다.
숙희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옛날 그 교회에 와 있다.
평일이라 주차장은 텅 비었다.
그녀는 차를 주차장 복판에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을 차 안에서 쳐다봤다.
그가 문을 열어 잡고 그의 팔 밑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숙희는 눈물이 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참 바보스런 사이였다.
오션 씨티에서 둘이 밤을 새우고 돌아와서는 교회도 발을 끊었다.
‘왜 그랬을까... 기다리기로 한 동안에도 교회를 나갔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않은 것은 쓸데없는 자존심과 지나친 조심성 때문이었겠지.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일단 헤어져서' 라는 말의 정의가 서로 잘못 해석되었나 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 시침떼고 교회에서 얼굴이라도 보며 위로를 찾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아니!'
숙희는 고개를 가늘게 저었다.'그 이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야. 마음이 너무 여렸어.'
숙희는 차로 크게 원을 그리며 주차장을 돌았다.
이 날도 그 날처럼 물이 미쳐 못 빠져 나가고 발목 깊이만큼 고여 흐르며 차가 지나간 뒤 긴 파문을 펼쳤다.
그 물 속에 잠긴 악보가 아직 있다. ‘뭣? 설마!’
차를 세우고 자세히 내려다 보니 악보가 아니고 대낮이지만 어두운 줄 알고 들어온 보안등이 물에 비친 것이었다.
그녀는 혼자 크크크거리며 웃었다.
그 때가 언젠데 악보가 아직도 물 속에 있을 거라고...
그녀가 차 안 콘솔 위에 놓은 셀폰이 삐르르르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보지않고 팔만 뻗어서 그것을 집어들었다. "헬로?"
"앞에 왔니?" 계모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희는 셀폰을 탁 접어버렸다.
이 가을비는 언제나 그치려는지 끈질지게도 온다.
하늘은 빈틈없이 짙은 회색이다.
그냥 비 오는 바다나 구경하게 오션 씨티가 가볼까?
그녀는 차 한대가 교회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다. 설마... 당연히 설마지!
그 차가 다가오면서 서행했다.
숙희는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봐 벤즈 세단을 가게 했다.
그 차에서 아마도 여자일 것 같은 얼굴이 이쪽을 보려고 물 흐르는 유리에 가까이 하는 것 같았다.
숙희는 그 주차장을 빠져 나가면서 행여 운서언니일 리가 없지 했다.
'참! 그 때 빌려 입었던 쉐타는 어떻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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