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전화기가 울었다.
운진은 허허허 하고 웃다가 누굴 지 뻔히 짐작이 되어 수화기를 들었다. 짐작대로 아내 영란이다.
“자기이! 왜 가게에 있어, 응? 집으루 와, 응?”
“알았어. 좀 있다 갈께.”
“내가 가요?”
“아냐. 금방 갈께.”
“빨리 와. 하루 종일 일 하고 잠을 자야지, 가게에서 또 술 마시면 낼 어떻게 장사...”
거기서 영란의 통화는 끊겼다.
운진이 수화기를 던져 버린 것이다.
그래 놓고 그는 자신이 왜 화를 내는 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새삼 모르는 일도 아니고, 처제란 여자가 흘리듯 말해줄 때는 잠자코 있다가 왜 이제 와서 화를 내는 지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행여 아내가 가게로 찾아올까 봐 운진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아내는 틀림없이 가게로 찾아올 것이다. 아니면?
짐작대로 옆구리에 찬 셀폰이 울었다.
운진은 대답없이 셀폰을 귀에 갖다대기만 했다.
“자기, 전화가 끊어졌어.”
“응, 그래. 떨어뜨렸어.”
“그 새 그 정도로 취했어요? 내가 데릴러 갈까, 운전 못 하겠음?”
“아냐. 괜찮아.”
“술 먹고 운전하다 걸리면 크게 걸리는데.”
“괜찮아. 끊어.”
운진은 셀폰도 던져버리려는 충동을 갑자기 느꼈다.
셀폰을 벽에다 세게 던져서 팍 하고 산산조각 내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났다.
대신 그는 셀폰을 꺼 버렸다.
그런 다음 그걸 뒷방 책상 위에 던져버리고 가게를 나섰다.
금방이라도 아내의 차가 들이닥칠까 봐 운진은 서둘러 그 곳을 떠났다. 주머니에 대략 헤아림으로 금 토 이틀치 주말 매상인 오천여불이 들어있다.
집과 정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며, 운진은 세상이 참 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살 만하면 깨뜨리는 일에 한몫하는 장모라는 여인도 참 희한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 초부터, 아니, 결혼하기 전부터 장모란 여인은 운진을 싫어했다.
운진이 눈 앞에 있어도, 아니, 딸과 같이 있어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최 장로만 그를 은근히 맘에 있어 했고 그를 큰딸과 잇게 하려고 청년회를 자주 초대했었다.
운진도 만만치않게 장모될 이를 무시로 맞상대했다.
운진 그의 집에서도 영란을 며느리깜으로 대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집에서는 숙희를 반대한 것만큼 영란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부모란 왜 그리 아는 게 많은 수준급들인지...
숙희는 뭐가 어떨 것 같으니 절대 안 되고, 영란은 뭐가 어떨 것 같아서 '조금' 안 된다고 반대했었다.
그렇다면 운진의 모친은 나름대로 대안이나 봐 놓은 참한 색시깜이 있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꼭 꼬집어서 말하라면...
운진의 부친이 숙희를 참 아까운 상대녀라고 하며, 어쩌다 만나면 좋게 대했다.
대신 영란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했다. 말 못할 무엇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랬는데 정작 아들 운진이가 숙희와 이별하고는 영란과 혼전임신하는 일을 벌이자 입을 닫았다. 즉 영란이 시집은 왔지만 예견했던 대로 아들이 그 집 데릴사위로 들어가니 자연 발을 딱 끊었다.
올 겨울은 참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진은 무작정 차를 몰고 다녔다.
마치 길 잃은 아이가 마냥 돌아다니는 것처럼.
차잇점이라면 차를 몰면서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
그러면서 운진은 결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그 겨울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의 아내에게 깜빡 끌려가졌던 어떤 해프닝을 되돌려 보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영란의 어떤 행동 때문에 충격 받아 정신없이 결혼까지 가게 되었던 스위밍 풀에서의 계략을 뒤집어 엎고 싶었다.
신이 너무도 완벽하게 만드신 그 놈의 여자 성기 때문에.
그리고 이 여자 셐스 경험이 많은가 보다고 놀란 때는 너무 깊은 관계까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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