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이 남편의 손을 살짝 뿌리쳤다.
“아냐, 자기. 나 이대로 그냥 가면, 집에 가서 잠 못 자. 그러니까, 응, 자기 차 따로 왔잖아? 그냥 자기는 갈래요? 난 나중에 가거나, 아님 여기서 자고 낼 아침에 갈께.”
“그냥 가자니까?”
“아냐, 자기. 응? 착하지? 먼저 가요, 응?”
운진은 아내를 부엌에서 나오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봐, 챌리엄마. 우리가 속도위반한 거 당신 엄마가 말할 때마다 왜 이렇게 당신 신경쓰는데? 우리가 잘 한 건 아니잖아. 우리도 챌리가 있지만 만일 챌리가 그렇게 하면 당신은 넘어갈 수 있나 보지?”
“아이, 이상한 소리하지 마, 자기. 내 오늘은 저 여편네 그냥 안 넘어 가. 하루 이틀, 한두번이라야 그냥 넘어가지. 어쩔 거야, 이미 우린 애를 둘이나 낳고 사는데! 그리고 내가 자기랑 결혼하고 싶어서 내가 먼저 속도위반했어.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 저 여자가 또 내 속을 뒤집냐구!”
드디어 영란의 광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운진은 침착하게 아내를 타일렀다. “이봐, 챌리엄마. 당신 엄마가 날 싫어하잖아.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지. 미운 놈이 딸만 안 건드렸으면, 나 같은 사위 얼굴 안 봤겠지.”
“아이, 자기 왜 이래! 자긴 자존심도 없니? 그게 뭐가 어때서? 우리 둘이 좋아하는데, 엄마란 여자가 반대를 하니까, 내가 자기랑 결혼하고 싶어서.”
“쉬쉬. 됐어, 됐어. 오늘 그 얘기 하러 온 게 아니잖어? 처제를 어떻게 하면 시집 보내줄까, 그걸 의논하러 와 놓구선 왜 당신이 흥분하냔 말야. 그래, 처젠 속도 위반 안 하고도 시집 잘 가고, 우린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해. 그게 당신한테 중요하나?”
“가만, 가만, 자기. 나 좀 헷갈려. 영아가 속도 위반 했다구?”
“노! 처젠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도 시집 잘 갈 거라구.”
“어얼씨구? 그래? 놀구 있네! 그 도둑년을 누가 데려가!”
그 때 방안에 있었던 영란의 모친이 나왔다. “야, 이년아! 그래서 저 오가자식이 니가 처음 속도위반한 놈이냐? 그리고 그 챌리애비란 자식이 니년한테 첫남편이냐구!”
그녀의 모친의 고함소리에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What the! (뭐야!)’
운진은 온몸의 피가 아래로 싹 몰려가고 머리가 깨끗이 비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아내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봤다. 아니.
그녀는 울려는 것 같이 보였다.
운진은 아내 영란의 야아아아! 하는 비명을 뒤로 하고, 그 집을 나섰다.
보나마나 모녀는 피 나는 싸움을 할 것이고 장인이라는 사람은 피하거나 구경만 할 것이다.
운진은 늘 하는 습관처럼 가게로 갔다.
그는 비상경보를 끄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뒷방으로 가서 늘 하는 습관처럼 술을 마셨다.
‘세상에 저런 장모같은 엄마가 또 있을까!’
운진은 킬킬거리고 웃었다. ‘암만 무식한 엄마도 딸의 과거는 얘기 안 하지. 도저히 이해를 할래도 이해가 안 되는 인간들!’
운진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할! 세상에 비밀은 없다더니, 이상한 데서 이상하게 뽀롱 나는구만!'
몇년을 마치 남남처럼, 한 집에 있으면서도 잠도 따로 자고 화장실도 따로 쓰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한 이불 속으로 들어오고 자기자기 하면서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떨던 아내가 이제 어떤 얼굴로 나올 지 운진으로서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내한테 과거에 남자가 있었다는 것은 그 사실을 고의로 밝힌 처제에 의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자가 다른 주에서 살고 있다는 말도 이미 들었다.
운진은 다만 부부간이 멀어졌었을 때 아내가 그 자를 만나고 다녔을까 하고 잠깐 의심만 했었다. 아니.
오히려 아내가 그 자를 만나고 다녔으면 하고 바랬었다.
‘제발!’ 하고...
그래서 아내에게서 놓여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의 난리도 그런 행운의 기회는 아닐 것 같다. 아니.
그가 스스로 그런 행운에서 먼저 나와버렸다. 아니.
그는 그런 행운이 두려워서 피했다.
이혼 당할까 봐 겁나서가 아니다. 이혼하면 돈을 많이 빼앗길까 봐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는 만일 이혼하면 그의 부모 앞에 면목이 없다.
그의 부모는 차라리 영란을 며느리로 받아 들이는데 그닥지 힘들이지 않았다. 숙희를 며느리깜으로 여기기 전에 그녀의 집과 마주칠 때마다 대판 붙었던 것에 비해 영란네와는 부친들이 먼저 친한 사이였다.
친한 사이에 딸의 비행을 시치미 딱 뗀 소위 장로란...
'[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1 6-10x060 (0) | 2024.07.31 |
---|---|
pt.1 6-9x059 (0) | 2024.07.30 |
pt.1 6-7x057 (0) | 2024.07.30 |
pt.1 6-6x056 (0) | 2024.07.30 |
pt.1 6-5x055 (0) | 2024.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