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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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9. 07:45

   차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 그제서야 둘은 머리를 쳐 들었다. 
   “형부. 우리가 먼저 집에 가 있어야 하죠!”
   “아니. 나 가게에 데려다 줘.”
   “왜요? 또 술 드실려구요?”
   “이대론 못 가, 나.”
   “이러다 큰일 나시겠네. 언니가 집에 가서 형부 차를 볼 텐데요. 가게에 어떻게 갔느냐고 물으면 뭐라 하실 거예요? 자연히 제가 온 게...”
   “지금 그딴 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니, 제가 언니보다 먼저 집에 갈 수 있어요. 가요, 형부!”
   영아가 운진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 “언닌 겁이 많아서 운전해도 하이웨이는 못 가고 로칼 밖에 못 타요. 우린 벨트웨이로 가면 빨라요. 얼른 움직여요!”

   운진은 영아의 기지로 정말 집에 먼저 도착하고, 그녀는 반댓길로 사라졌다.
운진은 곧 돌아 올 아내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 되었다. 아내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내가 금새라도 들이닥칠 텐데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운진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처제의 말이 거짓말이길 바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처제와 관계를 했다는 게 꿈이기를 바랬다. 지금의 모든 상황이 꿈이고 그래서 빨리 깨어 나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흔드는 자체도 꿈이기를 바랬다.
그가 새 맥줏병을 단숨에 나발 불어 비우고 빈 병을 부엌 쓰레기통에 넣는데 현관문 소리가 났다. 
영란이 열쇠꾸러미를 바닥에 던져 큰소리가 났다.
쓰레기통 뚜껑이 이 날 따라 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자기 아직 안 자고 뭐해!” 영란의 음성은 몹시 부르터 있었다. 
아내의 음성이 골나 있는 것이 운진에게는 차라리 도움이 되었다.
   “어디 갔다 오는데, 이 밤중에?” 운진은 목소리를 깔았다.
   “내일 얘기해요. 나 지금 되게 피곤해.” 영란이 피했다.
   “어디 갔다 오냐고!” 운진은 이번에는 언성을 높였다.
   “시작하지 마! 뭐 잘 한 게 있다고! 낼 애기 하재잖아!”
그런 다음 영란이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그 뒤를 이어 남자의 헛기침 소리가 났다. 
영호의 의식적인 기침소리였다. 그가 안 닫힌 문을 통해 들어섰다.
운진은 그냥 입은 채로 영호를 밀고 집을 뛰쳐 나왔다. 
   "좃같네, 씨발놈의 세상! 밉다는 이 새끼는 또 왜 와!" 
헛기침으로 약을 올리는 처남 영호를 두고 하는 투덜거림이었다.
   운진은 가게로 가서 영아에게 전화를 했다. 가게에서 만나자고.
그런데 영아가 뺐다. “제가 형부를 또 만나면 언니가 우리 식구 다 죽일 거예요.”
   “흥! 증거를 다 없앨라구?”
   “언니의 비밀을 탄로낸 게 저랑 엄마거든요.”
   “그때 내가 있었다구. 언니도 같이 들었어, 장모님의 말을.”
   “그랬죠. 그래도 지금은 안 만나는 게 좋아요.”
   “그래? 그렇다면,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된 거야, 처제가 내 방에 들어온 거야?”
거기서 영아가 전화를 끊었다. 
   ‘뻔한 걸 왜 물어, 임마! 병신에 비겁한 새끼! 꿈이어라. 제발 꿈아 깨라!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운진은 결국 담배를 찾았다. 그는 의자를 멀찌감치 놓고 앉아 담배갑을 책상 위에 던졌다. 
피우자는 충동질과 참으라는 만류가 한데 어우러져 다른 생각을 잠시나마 잊게 도와주었다. 
아무 생각없이 담배갑만 물끄러미 바라다 보며, 운진은 그렇게 있었다.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화를 내야 할 지 좋아해야 할 지. 
바람 피워 온 아내를 확인도 안 해보고 족쳐야 할 지 아니면 모른 척 해야 할 지. 
그냥 속으로 생각만 했다.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리고 암만 술 기운에 실수를 했다고 들러대도 처제를 건드린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가 뭇남자와 바람을 피운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적어도 운진은 아내의 불륜 보다 처제와의 불륜이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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