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9-1x081 영아의 첫사랑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9. 08:12

영아의 첫사랑

   영아가 운진을 남자로 처음 본 게 그러니까 운진이 성가대장과 지휘자의 강제 권유와 반 위협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영란을 집으로 찾아가서 만났을 때였다. 
교회에서 소프라노 독창을 다시 맡아 달란다고 전화로 말하려 했는데, 그녀의 부친의 참견으로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 일의 시작은 이랬다.

   교회에서 성탄절 찬양 연습으로 성가대원들은 주일 예배 후에 집에도 못 가고 다시 모였다. 
   ‘오! 거룩한 밤’ 이 채택되었다. 
누가 그 독창을 할 것인지를 지휘자와 성가대장이 의논하는 사이 대원들은 연습실에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베이스를 맡은 운진은 동료 성가대원 한사람과 콧노래로 음을 맞추고 있었다. 
그 때 연습실문이 열리며 몇사람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맨 앞에 영란이 잔뜩 골난 얼굴로 섰고, 그 뒤로 성가대 지휘자 양반, 교회 청년회 회장과 성가대원인 어떤 장로가 들어와 섰다.
   “자, 여기 보시요!” 
   지휘자가 손뼉을 쳐서 주위를 끌었다. “에, 또오. 우리가 하기로 한 오! 거룩한 밤의 독창을, 쏘프라노가 하는 게 나을 지, 아니면, 테너가 하는 게 나을 지, 우리 투표로 정합시다?”
대원들이 하나같이들 ‘으응?’ 하며 의아해 했다. 그리고는 곧 낌새를 알아차렸다. 
영란의 쏘프라노와 청년회 회장 성렬의 테너가 서로 하겠다고 싸움이 붙은 것이었다.
영란이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운진을 쏘아봤다.  
운진은 그녀가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단지 속으로, 여긴 교회인데, 구태여 자신의 성악을 꼭 과시해야 하나... 했다. 
그녀는 부활절 찬양 때 이미 독창을 맡았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고, 실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하면 듣는 이들이 혹 식상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휘자의 걱정이었다.
성가대장이며 영란의 부친인 최 장로는 중간에서 난처했지만 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에 동의했다.
   직업이 목수인 교회 청년회 회장은 교회 안에 제법 많은 하청업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성가대 청년들은 눈치가 보여 당연히 테너도 색다르겠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그렇다면 제법 큰 물주인 최 장로의 딸을 실망시켰을 때 헌금에 지장이 있을 것이었다. 
치사하지만 그것이 은근히 당회의 걱정이었다.  
그래서 소프라노냐 테너냐 하고 투표가 벌어졌는데.
   투표 결과 테너도 색다르니 시도해 보자는 결론이 났다. 
청년들은 오 예이! 하며 좋아했지만, 성가대장은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영란이 방을 뛰쳐나갔고, 성가대장이 운진더러 따라가 보라고 독촉하고는 방을 나갔다.
   “제가 뭐 해 줄 말이 있다고 갑니까?” 
운진은 난처해했다. 내가 저 여자하고 뭐라고... 
지휘자도 운진을 따로 불러 세워 뭐라 거들라고 재촉했다.
   “허, 나아차암! 제가 뭘 말 할 위치에 있지 않다구요.”
그 때 문이 빼꼼히 열리고 영란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운진씨이, 저 좀.”
   “녜? 저요?” 운진은 당황했다.
지휘자가 운진의 등을 떠밀어 내쫓다시피했다.  
   “날 왜 보자하지?” 운진은 다 들리게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간 뒤 성렬의 불편해 하며 목 가다듬는 소리가 크게 났다.
복도에는 영란과 그녀의 부친 최 장로가 서 있었다.
운진은 일단 최 장로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얘가 단단히 속상해 하는데, 자네가 좀 달래줘야 쓰겠네!”
   “녜에?” 운진은 영란을 돌아다봤다.
   “운진씨는 누굴 찍었어요? 소프라노예요, 테너예요?” 영란이 골난 목소리로 물었다.
   “전... 기권인데요?”
   “왜요? 제가 독창하는 거 안 좋아하시나 보죠?”
   “아뇨. 그런게 아니라, 전 그냥...”
   운진은 은근히 부화가 났다. "사실 많이 하셨잖아요."
   “제가 이 알량한 교회를 왜 나오는 지는 아시죠?" 
   "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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