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갑은 정 장군에 대한 면회신청이 두 번이나 반려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혹 그 새 송 마담이나 숙희가 정 장군을 만났나 하고 상상하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 날 숙희를 납치해서 어디로 데려가려고 합세시켰던 쫄따구들이 반기를 들었다.
진정서 올리기 전에 두 번 다시 뭘 시키지 말라고.
이제 한순갑은 숙희의 집 앞은 커녕 학교로도 찾아 가지 못 한다.
그렇다면 정 장군을 거세 시키기 위해서는 정적을 포섭해서 약점을 폭로하는 수 밖에는.
그 동안에라도 송 여사나 숙희가 정 장군을 못 만나도록 해야 하는데...
모녀는 또 술을 나누고는 합의했다. 아버지를 안 찾기로. 왜.
이제 와서 찾는다고 달라질 것 없고.
괜한 집안에 풍파만 일으킬 것 같고.
그리고 정말 이십년이 가깝도록 찾고자 했으면 못 찾았겠느냐고.
숙희는 술을 많이 마시고는 엄마 사랑해 그리고 날 낳아줘서 고마워 하고 또 뽀뽀를 쪽쪽 했다.
송 여사는 딸을 꼭 끌어안았다. "정말 괜찮은 거지, 내 딸?"
"응."
"날 앞에선 이렇게 안심시켜놓고 다른 맘 먹는 거 아니지?"
"응."
"평생 비밀로 해야 한다고 늘 결심했는데. 한 중령님이 발설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
"그 군인들은 그냥 어 언젠가 정 장군님을 했는데, 내가 탁 찌른 거야."
"나중에 우리 숙희 시집 갈 때, 그 때나 알릴까 했는데."
"응... 아냐. 알릴 거 없구. 나 엄마 혼자 놔두고 시집 안 가."
"그래도 갈 때 되면 가야지."
"아니. 세상 남자들... 아냐."
숙희는 모친을 안고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 내가 세상 남자들 다 내 앞에 무릎 꿇릴 거야.
숙희는 3학년으로 넘어가는 2월달에 김 중위의 추천을 받아 어떤 대회에 나갔다.
심사위원 측에서 김흥섭 중위를 여러 차례 불렀다.
송숙희라면 여자 이름 아니냐고.
"가드 하고, 대련만 하는데 문제 없지요." 김 중위는 사뭇 빌었다.
해서 숙희는 처녀 출전을 했는데.
숙희가 홍일점이다 보니 상대 선수는 당연히 남자였다.
그 남학생은 호명 받아 원 안으로 나와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대가 여자인 것이다.
그 남학생이 제 코치를 돌아다 보고는 심사원석을 쳐다봤다.
다른 선수들과 참관인들이 웅성웅성거렸다.
숙희는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하고 차려 자세로 침착히 기다렸다.
주심격인 심판관이 남학생과 숙희를 원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주의 사항과 벌점과 득점에 대한 간단한 설명 후, 주심이 손으로 신호하고는 시작 하고 소리쳤다.
숙희는 이미 전진을 시작하는데, 남학생이 아직도 상대가 여자인지라 당황했다.
이단! 김흥섭이가 소리쳤다.
숙희의 오른발이 상대 선수의 어깨 높이 정도로 올라갔다.
남학생이 허 하고는 공격 자세를 취했는데.
숙희의 특유 공격인 그 자리에서의 삼백 육십도 공중회전 차기가 나왔다.
그녀의 오른발 뒷꿈치가 상대 남학생의 뒷통수를 내리 눌렀다.
그 선수가 두 손으로 앞을 짚으며 넘어졌다.
"일점!" 주심이 소리쳤다.
그런데 의지에 앉은 심사관 한 명이 손을 들어 남학생에게 실격을 선언했다. "벌점 일! 도합 이점!"
두 선수가 다시 맞섰다.
시이작! 주심이 소리쳤다.
남학생이 점수를 빨리 따려는지 계속 발을 놀리며 공격해 들어갔다.
숙희가 달려오는 남학생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렸다.
상대 남학생은 피했지만 옆구리를 맞아 뒷걸음질을 해야 했다.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숙희는 또 한번의 회전차기로 우승을 굳혔다.
예선 시합은 이 대 일로 가볍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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