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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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4. 10:15

   윤창원은 예정 보다 일년 빨리 복학한 셈인데.
학교에서는 ROTC 제도와 혜택이 있는데, 일부러 현복무를 고집한 이유를 물었다.
창원은 혹 군대를 영원히 못 벗어나는 불상사를 초래할까 봐 그랬다고 둘러댔다.
   "일년 만 더 했으면, 소위로 임관하고. 거기서 삼년, 같은 삼년만 복무하면 자유로와지는데."
주임 선생이 창원에게 의심쩍은 눈초리를 던지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창원은 동창들이 거의 소위로 임관되어 뿔뿔히 흩어진, 그래서 그에게는 텅 빈 교정을 절룩거리며 걸었다. 그는 행여 송숙희를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김정애는 마지 못해 창원을 계단 끝에서 기다렸다. "숙희는 후배 양성에 땀을 흘리고 있대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이제 복학하셔서 지난 계간지를 못 받아 보셨구나..."
   "숙희가 뭐 하는데?"
   "태권도반... 사범이잖아요."
   "숙희가..."
   "지난 번 시합에 나가서 단체 우승에 개인 부문에서도 메달 두 개 땄어요."
   "와아..."
   "숙희는 두 해 연달아..."
   "와아..."
   "그리구..."
   정애는 결정적인 거짓말을 던져서 윤 선배가 낙담하여 사라질 것을 예상하고. "숙희랑... 교관 김 중위랑 이제 그렇고 그런 사이로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윤창원은 곧이 곧대로 받아 들였다. "잘 됐네. 이젠 우리도 홀가분... 하다."
김정애는 김이 샜다.
   이제 곧 김 중위는 시골에서 선생하는 국민학교 동창하고 식을 올리는데.
   윤 선배 이 사람이 김 중위에게 다시 도전장을 던져서 모두가 파토나게 되는 걸 기대했는데.
   숙희는 금남주의를 부르짖으며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하고...
창원은 계단에 걸터앉아 한산도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를 쭈욱 빨아들이면 다리의 통증이 아주 조금 가셔진다.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정애가 숙희를 먼저 봤다.
숙희는 이 날도 태권도반 학생들에 휩싸인 채 정문으로 향하는 언덕을 내려갔다.
학생들은 자랑스러운지 다들 도복을 띠로 묶어서 어깨에 걸쳤다.
   선배님
   사범님
   언니 등등 재잘재잘거리는 말들이 빈 교정을 울렸다.
창원은 새 담배를 꽁초에 연결해서 불을 붙이고 또 쭈욱 들이 빨았다.
다시 아프려던 다리가 조금 가셔졌다. 니코틴이 통증을 갈아앉혀주는지.
창원은 머리를 움직이지않은 상태에서 시야에 들어온 무리를 봤다.
그 무리는 여학생 남학생 섞였는데 숙희의 큰 몸과 걸음걸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 무리는 정문 수위에게 일제히 인사하고 통과했다.
   "왜 김 중위가 안 보이지, 저기에?"
   "..."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서... 방과 후에 데이트도 안 해? 난 숙희랑 매일 만났었는데."
   "..."
   "김 중위가 숙희를 마음에 있어 하긴 했었어도... 일찍 포기한 것 같았던데."
   "..."
   "숙희는 군복 입은 사람들에게 증오심이 있어."
   창원은 필터까지 피운 꽁초를 손가락에서 날렸다. "그런 숙희가 김 중위와?... 글쎄?"
정애는 윤 선배더러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녀는 그 말이 오래 전부터 입술에 매달려 왔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정애는 친구를 잃은 것에 윤 선배까지 잃게 되고, 혹 윤 선배가 숙희더러 다시 시작하자 할지 몰라 불안해졌다. 그녀는 윤창원을 진정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숙희를 막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했다.
그녀는 그가 숙희와 김 중위의 사이가 아무 것도 아니란 쪽으로 가는 것이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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