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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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4. 10:15

   숙희가 창원을 마주친 것은 해가 또 바뀌고 나서였다. 
   "오! 윤 선배! 복학했어요?"
숙희의 아무렇지않게 던지는 말에 창원은 목이 아파와서 말을 못 했다. 
숙희는 언제 복학했느냐 졸업은 언제 하느냐 하는 그 다음 인사말을 생략한 채 지나쳤다. 
그녀가 복도를 걸어가는데 아마도 후배 학년들인 듯한 무리가 그녀에게 깎듯이 인사를 했다. 그녀도 그들에게 깎듯이 인사하고 계속 가는 것이었다.
   올해 봄까지만 대회에 나가고 담부터는 안 나간대
   아냐 졸업반이라 올해부텅 걍 안 나간댕
   그럼 인제부턴 우리가 못 이기면 일 나네
   그러니까 이겨야지
   와아 송 선배 먼저 대회에서 실수로 넘어져서 졌는데에
   울었어
   분하지이
   와아 이를 드득드득 갈면서
그 무리가 창원은 그냥 슥 보기만 하고 지나쳤다.
창원은 숙희가 완전히 안 보인 다음에 걸음을 떼었다. 
절룩!
그는 오늘은 마치 신경통 환자처럼 허벅지부터 땡긴다. 아마도 꽃샘하는 눈이 올 것 같다. 
   학교 전용 버스가 정문 앞에 대어져 있다. 태권도반 학생들이 다른 대학교와 친선시합 겸 시범경기를 하러 간다. 
검은 도복을 입은 숙희를 위시해서 모두 흰 도복을 입고 허리띠 색은 알록달록한 학생들이 두 줄로 질서정연히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열 외로는 고학년인 듯한 검은 도복들이, 전부 남학생들이 낮은 구령을 붙이고 있었다. 
숙희가 정문 수위에게 인사를 했고. 그 무리가 전처럼 수위에게 구십도 절을 했다.
   꼭 이기고 오너라 응?
   오늘은 그런 시합 아니예요
정문을 수시로 드나드는 학생들이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몇몇 학생이 까분다고 두 팔을 쳐들고 우우 하다가 송 사범을 보고는 얼른 수그러들었다.
그 무리는 버스도 아주 질서있게 오르면서 운전수에게 모두 인사했다.
숙희가 타고 남학생들이 주위를 한번씩 더 둘러보고 마저 올랐다.
버스는 정문 앞 마당을 한번에 돌아서 큰 길로 나갔다.
창원은 그런 광경을 수위실 벽에 의지하고 서서 다 구경했다.
   윤창원 그도 그 버스에 당연히 타고 갔어야 하는 것인데.

   해질 무렵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은 숙제할 것들을 모두 베껴야 했다. 
오후 강의는 시합 때문에 빠졌지만 숙제는 꼭 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시합과 연습 핑게로 성적이 떨어졌다 하기만 하면 태권도반에서 쫓겨난다.
태권도반 학생들은 머리도 단정해야 하고 복장도 단정해야 하고 그리고 선배나 어른에게 인사성이 밝아야 하며 끝으로 사용하는 언어도 어른스러워야 한다.
시합 때 혹 상대 선수를 좀 심하게 때렸거나 아프게 찼으면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졌을 때는 상대 선수에게 역시 인사해야 한다. 
잘 배웠습니다 하고.
   "나갈 때마다 져도 좋아. 단, 풀이 죽어서 들어오면 가만 안 놔둘테다!"
   송 사범의 호령이다. "져서 들어와도 당당하라!"
그래서 진 놈이 꾸뻑 인사하고 보조도 당당히 팀으로 돌아가며, 팀원들이 박수를 쳐주고 하니 다른 학교 팀들이 설령 이겼어도 어이없어 하고 되려 풀이 죽는다...
   "오늘 수고들 많았어."
숙희의 말에 반원들이 박수를 쳤다.
   "오늘 이기고 지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도록. 왜. 우리는 항상 최선을 다 하니까. 오늘은 내가 어디서 실수를 했나... 집에 가서 숙제하면서 잘 연구해 보도록. 이상!"
숙희가 소리도 크게 손뼉을 딱 쳤다.
수고하셨습니다아!
그 함성은 밖에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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