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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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2. 05:36

   운진은 정애의 목에 이어폰 와이어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꼴에 신세대 아주머니네...'
운진은 그 와이어를 따라가다가 그녀의 가슴께에서 멎었다. 그리고 정애의 자그마하지만 만지기에 아주 적합한 유방을 옷 위에 그려냈다. "음악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정애가 그 와이어를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아, 네에. 주방이 좀 시끄럽거든요."
   "그걸 하고 일해도 들립니까?"
   "크게 듣는 건 아니니까요."
   "네에..."
운진은 새삼 그녀와 침대에 들었던 아주 한참된 기억을 되살렸다.
   당시 운진은 상처한 후였고, 그녀는 기러기 생활로 허전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두 중년은 아주 능숙한 부부행위처럼 서두르지 않고 아주 골고루 돌아가며 재미를 봤었는데.
지금의 아내는 웬만해선 반응이 없다가 한번 달아오르면 무자비하게 요란한 셐스를 치룬다...
   "애들은... 다 공부 잘 해요?"
운진의 그 말에 정애가 잠시 방황하던 눈길을 모아왔다. "네, 그럼요! 엄마가 고생하는 걸 빨리 덜기 위해서라도 조기 졸업한다고 벌써들부터 난리예요."
   "어우... 착하네요, 들."
정애의 손이 마치 본능적인 것처럼 또 쟁반 위의 종지들을 가지런히 해준다.
   "참! 이 집에서, 아니, 여기서 일, 안 하시죠? 어디, 다른 집에서 하시... 나?"
정애가 탕 전문집을 흘낏 돌아다봤다. "네. 좀..."
운진은 그 탕 전문집 주방에서 스패니쉬 남자 하나가 커튼을 들추고 나오는 것을 봤다. 
   "부엌일은 죄 스패니쉬들이 하나 봐요?"
   "네. 쟤들이 음식도 만들죠."
   "쟤네들이 우리 음식도 만듭니까?"
   "대부분이 주방장이 준비해 놓은 것을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웬만한 것은 다 쟤네들이 만들어서 먹어요."
   "쟤네들이 우리 음식을 먹어요?"
   "그럼요! 잘 먹어요."
   "희한하네..."
   "김치를 얼마나 잘 먹는데요. 밥에다 비벼서."
   "희한하네..."
운진은 갑자기 김여인 그녀와 자고 싶고 위로를 받고 싶다.
웬지는 모른다.
정애는 운진의 희망을 묵살한듯 전혀 내색도 않는다. 아니. 
정애도 상상만으로만 그랬을 뿐이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운진은 단지 속으로만 못된 욕심을 내본 것이다. 왜.
어차피 김정애 같은 여인은 길에 나온 여자이다. 즉 아무 남자나 끌어들여서 몸 섞고 잔돈푼이나 받아서 쓰는... 
한국에 이혼 안 한 남편이 있으면서.
그리고 가끔 이렇게 남자를 위협적으로 불러내어서는 수작을 붙이는 그런 여자이다.
   "절 보자는 용무가 뭡니까?"
   "그냥... 뇨. 궁금하기도 했구, 숙희와 결혼한 분이라는 것이 놀랍기도 했구."
   "왜 놀랍다는 거죠?"
   "숙희... 한때 한국에까지 소문날 정도로 여기서 형편없이 살았던 거... 아세요?"
   "뭐라구요?"
   "모르시나 보다아! 숙희... 여기 이민 와서 아주... 걸레처럼 굴었던 거... 모르세요?"
운진은 정애의 몸을 생각하며 달아올랐던 기분이 싹 가셨다. "뭐요? 뭐처럼 굴어요?"
   "숙희 걔 어머니가... 그래서 팍삭 늙으셨잖아요."
   "어머니 돌아가신 건... 얼만 안 됐는... 데."
   "아아! 여기 어머니는 숙희 동생 공희 엄마구요. 숙희 낳은 어머니는 한국에 있어요."
   "뭐요?"
   "기집애! 아주 감쪽같이 다 숨기고... 그러면서 오 선생님이랑 결혼했구나아..."
   "그래요... 정애씰 더 만날 구실이 생기네?"
   운진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아예 깨놓고 정애의 가슴께와 아랫배께를 훑어봤다. "애인 생겼어요?"
정애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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