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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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3. 00:54

   운진은 늘 그러듯 지하실에서 혼자 술을 들었다.
   백인 남자들과 돌아가면서 아주 걸레처럼 섹스를 밥 먹듯이 했대요.
   딸이 아마 있죠? 여기서 대학 다닐 때 백인 남자 친구랑 불장난해서 낳은.
   그의 귓전에 정애의 깐족거린 말이 귀에 쟁쟁하다. '시발! 뭘 얼마나 형편없이 굴었길래 한국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는 표현을 다 써.'
그리고 운진은 어떤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툭 하면 깜짝깜짝 놀라고 어떤 대상 없이 늘 두려워 하는 것이 비단 밖에서 이상한 이유로 노리는 놈들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과거 때문에 그런다?'
   '고작 나 같은 것한테 알려질까 봐?'
   '딸이... 여기서 대학 시절에 있었다면... 여태 살아있다면... 몇살인가?'
   그는 자신의 셀폰에 몰래 간직하고 다니는 폴의 스냎 사진을 찾았다. 늘 그립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참아야 하는 핏줄. '그래서 챌리가 유독 폴을 누구 이상으로 귀여워 하는데.'
두잔째 비우고 빈 글래쓰를 내려놓는 운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운진. 너는 깨끗하게 산 놈이냐?'
운진은 손 뻗치면 닿는 거리에 놓인 위스키 병을 초점 맞추려고 흔들거렸다. '술이 들어가지않으면 잠을 못이루는 병이 비단 죽은 아내 때문만이었냐?'
그는 제 손을 들여다봤다.
   '두명을 이 손으로 목 졸라 죽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운진의 한쪽 눈에서 눈물이 굵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죽기로 덤비면 죽음이 되려 피해간다는 진리를 너희들은 아느냐! 이제부터 그런 진리는 저 사람을 위해 써?'

   "자기!"
   "응?" 
운진은 숙희의 부름 소리에 기절할듯이 놀라 잠이 깨었다.
   "또 여기서 자네?"
   "응?"
운진은 지하실 미니 바 카운터탚에 엎드려서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암만 기다려도 올라와야지. 그리고 자기 술을 점점 더 하면 어떡하니!"
   숙희가 혀를 차며 빈 술잔을 미니 바 너머의 싱크에 넣었다. "어머! 이걸 한번에 다 마신 거니? 응?"
   "응?"
숙희가 4홉들이 가까운 사이즈의 위스키 병을 들어보았다. "자기 왜 그러니, 대체?"
운진은 그제서야 하이 스툴에서 떨어지듯 내려섰다.
   "자기... 왜 그러는 건데."
   숙희가 카운터탚을 돌아나왔다. 그리고 운진을 부축했다. "무슨 고민거리 있어?"
   "고민?'
   운진은 초점 안 맞는 눈으로 숙희를 보려고 애썼다. "나 같은 놈이 무슨 고민거리가 있겠나? 아무 일도 안 하고 밥이나 축 내는 놈이."
   "내가 자기더러 일 하지 말라고 반대해서 이러니?"
   "일?"
   "우리, 꼭 일 해야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그래서 이러는 거냐구."
   "사람이... 마음 속에 가득찬 것을 밖으로 내뱉지 못하니... 참..."
   "무슨 말인데?"
   숙희는 저도 모르게 속이 뜨끔했다. "마음 속에 가득 찬 그게 뭔데?"
   "그걸 밖으로 말하지 못하니 이렇게 답답하고... 술이 들어가도 떠내려 가지도 않고. 그래서 암만 마셔보지만... 그저 제 자리에 가만히 고여만 있구려."
숙희가 슬쩍 외면하는데,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운진이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정말..."
숙희는 천장으로 눈길을 돌리며 나오려는 눈물을 도로 담으려고 했다. 
그가 겨냥 못하는 손으로 아내를 붙잡으려고 했다. "올라가자고."
   "나 몸에 힘 주면 안 돼." 
   숙희는 남편의 손만 잡으려고 했다. "잊었어? 나 임신인 거?"
   "오! 참, 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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