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게 있잖니. 자기는 어떤 거든 누구든 용서가 안 되는 그런 성격, 아니잖아."
숙희는 운진의 손을 마치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듯이 쥐었다. "내가 알고, 그리고 내가 믿는 오운진이란 남자는, 어떤 추잡한 꼴을 당해도 다 용서하는, 그런 남자잖아."
운진이 돌아누우려는 것을 숙희가 잡아 당겼다.
"자기는 챌리부도 챌리 때문에 어찌하지 못 하고, 용서라기보다는 챌리가 또 상처 받을까 봐 놔두고 있는 거잖아."
숙희는 그의 손을 끌어다가 가슴에 안았다. "자기가 말 한마디만 하면 그자는 평생 바깥 햇볕을 못 보게 되는데... 챌리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운진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런데 그자가 간뎅이 크게 나한테 장난을 걸어. 그래도 자기는 손을 안 쓰잖아."
숙희는 이제 힘을 뺀 그의 손에 입술을 대었다. "자기가 그런 용서하는 성격이 아니면 어떻게 챌리 걔의 부친을 그냥 두고 있겠어."
운진은 어지러운 머리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나는 자기가 그 칼 같은 성질을 나한테만은 참고 사는 걸 알어."
숙희는 운진의 팔에 머리를 실었다. "나는 알어. 옛날부터. 자기한테는 불같은 성질이 숨어있다는 걸. 아마 김 선생님이 그걸 알고 나한테 말했을 거야."
"별로 그렇지도 않소."
"바깥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평하는 게, 나는 흉이라고 보지 않어. 자기는 집에서, 그리고 나한테는 굉장히 죽어 지내지만 밖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나 보다고."
"좋게 봐주니까 그렇지."
"내가 말했나? 나 가끔 자기 눈 마주치면 깜짝깜짝 놀란다는 거."
"왜..."
"자기가 어쩌다 안 좋은 감정이 생기면 그러나 봐. 남을 째려보는 거."
"아직 수양이 덜 되어서 그래."
운진의 팔이 숙희의 머리를 쥐었다 놓았다. "자자고."
"자기가 그랬잖아. 바닷가 모래에다 써 놓고 사람들이 안 지워질까 봐 소리지른다고. 나 그 말 들었을 때, 자기가 나 들으라고 한 줄 알았는데?"
숙희는 이제 남편의 반듯해진 가슴에 머리를 얹었다. "나 그 말 듣고 얼마나 감동 먹었는 줄 아니? 아, 이 사람은 그래서 그 흉한 꼴들을 다 보면서도 다 받아들이는구나아..."
"소가 뒷걸음질로 어쩌다 쥐 잡은 걸 가지고 되게 과대평가하네."
"소가 필요없어 보이는 꼬리로 파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는지 모르지?"
"내가 보기에는 쫓대, 뭘. 파리가 눈이 멀었거나."
"흐흐. 술이 참 빨리 깨는구나, 자기는?"
"자랑은 아니지만. 자랑하면 바보지만. 그깟 술 몇잔에..."
"참! 낼모레가 킴벌리 생일이다, 자기?"
"엉? 또?" 운진은 남은 술기가 확 깨었다.
"나도 말해놓고 놀라네. 어떡하니? 아무 것도 준비 안 했는데?"
"앤가? 준비는... 돈으로 주지?"
"얼마를?"
"한... 백불?"
"처녀애한테 생일 선물은 못하고 돈 백불을 주니?"
"그럼..."
"글쎄?"
"걔 용돈으로 받는 돈 다 모으나 보던데."
"지독하지?"
"내가 없이 키워서 그러나?"
"그래서는 아니고. 킴벌리, 보기처럼 보통 야무지지 않어. 아마 모르긴 해도 꽤 모은 눈치야."
"헤헤헤."
"저번날 제이콥이가 뭘 샀는데, 킴벌리한테 야단맞는 거 같더라?"
"흐흐흐. 벌써 보이는구만."
"둘이... 끝까지 갈 거지?"
"키미보다 제이콥이 더... 그러는 것 같지?"
"지들끼리 좋은 배필 만나는 것도 복이야. 알어,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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