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pt.3 12-5x115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3. 01:01

   "길에서나 몰 같은 데서 배 부른 여자를 보면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나?"
   운진은 그렇게 말을 꺼내면서 농으로 돌릴까 아니면 심각하게 돌릴까 생각했다. 
임신을 했으면 당연히 배가 불러올 것이고, 그런 모습을 숙희가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딸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기 싫다 하는 표현은 염두에 두어볼 만한 점이다. "아기를 뱃속에 넣고도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신 신의 기적을 본다구."
   "처음 말 시작했을 때, 다른 생각으로 했지!"
   "응?"
   "남자들끼리는 음담패설 같은 거 많이 하잖아. 배 부른 여자 보면 뭘 생각한다구?"
   "셐스의 산물."
   "허! 내 그럴 줄 알았지. 저질들!"
   "아냐?"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냐? 여자는 아기를 뱃속에 열달을 넣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남자들은 상상도 못 하지?"
   "꼭 경험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네."
허걱!
숙희는 하마터면 발각나는 줄 착각했다. 
   '당연하지!' 하고. 하마터면...
   '설마... 나를 유도하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숙희는 절로 시무룩해졌다. '의도적으로 임신했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실수로라도 임신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운진이 쑥스러워하며 내던진 '셐스의 산물'이란 저질적 표현이 숙희의 가슴을 아프게 친다. 
   임신은 사랑의 산물이라야 정답인데. 
숙희에게 에밀리라는 딸은 숙희가 가장 저주하는 말, 남자가 여자를 강간한 범죄의 산물이다.
   사람은 스스로 지어내는 자격지심으로 자신을 얼마나 옭아매는 걸까.
숙희는 20년을 넘도록 까맣게 잊고 살아온 딸의 존재에 대해 최근에 와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려는 순간을 맞을 때마다 간이 철렁한다.
   '에밀리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일까.'
   숙희는 남자들 중에서 딸에 대해 아는 이들을 셈해봤다. 
그러다가 절로 허리가 꼿꼿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티미도 알까? 제프와 친한데?'
티미도 알고 있었으면 써니에게 당연히 폭로했을텐데...
   프론티어 뱅크가 넘어갈 무렵, 그러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오라이언 뱅크의 전신인 주피터 뱅크가 프론티어 뱅크를 먹을 무렵, 제프가 알트의 독재적인 폭정에 반발하며 쑤를 캘리포니아로 빼돌리면서 절친인 티미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쑤가 캘리포니아에서 일년 반 정도 살았을 때, 티미에게서 모진 고통은 당했어도 딸이 있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제프가 평소 친절한 성품이지만 거기까지는 밝히지 않았는지. 
티미가 연상되면서, 숙희는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게다가 티미가 연결시켜준 좐 때문에 마약을 계속하게 되었던 것도 그녀의 목을 죄인다.
그리고 제프가 쑤를 피신시켜준 것에 대한 알트의 보복으로 결국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된 미안한 마음에 심장이 멎는다. 그러나 그가 투옥되기 직전까지도 애정을 나타내다가 쑤가 결혼을 핑게로 돌아선 것을 알아채고는 그도 역시 그녀를 알트에게 바치려 했다. 다행히 남편을 잘 알고 지내는 주몰에 의해 무사히 빠져 나왔지만...
그녀가 몸과 마음을 바쳤던 사내들은 하나 같이 그녀를 파멸시키려 들었다.

   "왜 그래, 당신?" 
운진이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숙희는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랬다. "응?"
   "아니, 뭐, 그런 농 갖고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나."
   "농이었다구?" 
   숙희는 애써 웃었다. 
농이라도 임신에 대해 경험있는 것처럼이란 말은 폭탄이다. "농 치고는 좀 그래서..."
   "하긴 미국 사람들 틈에서만 평생 직장 생활을 했으니 한국식 농이 통하나?"
   "한국식 농, 미국식 농, 달라?"
   "미국식 농이 더 저질이지, 뭘... 코메디 센추럴 같은 거 봐 봐."
   "나... 농할 줄 알어, 자기."
   "근데 왜 그렇게 받아들였지?"

'[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3 12-7x117  (1) 2024.09.14
pt.3 12-6x116  (4) 2024.09.14
pt.3 12-4x114  (5) 2024.09.13
pt.3 12-3x113  (3) 2024.09.13
pt.3 12-2x112  (1) 202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