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꾸 먼저 간 이의 행복을 가로채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숙희가 또 그런 말을 했다. "다 키워놓은 자식들 행복 찾아 가는 것을 내가 하잖아."
운진은 대꾸할 말을 찾느라 뜸을 들였다. "당신이기 때문에 이리 순조롭게 풀어지는지도 모르오. 전의 사람 같았으면 아마 모르긴 해도 환경이 달랐을 테니."
"그랬을까? 내가 왔음으로 해서 쟤네들의 환경이 달라진 거라는 말이잖아."
"그 말이지."
"왓핫핫하!"
숙희가 배를 잡고 넘어갔다. "자기 왜 자꾸 나한테 쩔쩔매니?"
"당신이 점점 어려워져서."
"나는 살면 살수록 자기가 더 가까워지고 마음이 점점 더 열리는데? 그래서 내가 거리를 안 두려고 말도 놓는데?"
"그렇게 하시오. 나는... 당신이 어려워서 말이... 점점..."
"옛날 드라마에서처럼 그럴까? 짐이 중전의 젖가슴을 보고 싶어 하는데 부디 허락해 주시요. 황송하옵나이다, 마마. 그리 하시옵소서. 왓핫핫하!"
"성은이 망극하지, 치이!"
"핫핫핫! 마마가 쇤네의 젖가슴을 보고 싶어 하시니 성은이 망극하옵... 핫핫핫!"
숙희가 소파에서 대굴대굴 구르며 웃고.
운진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구경하는데.
"엄마!"
챌리가 언제 앞에까지 왔는지 꽥 소리를 지르고는 식식거렸다.
숙희가 웃음을 거두고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챌리."
"엄만, 아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어요?"
챌리가 분이 가득해서 얼굴이 빨갛다. "내 기분은 하나도 안 알아주구?"
"으응. 아빠가 날 웃게 해서."
"난 하나도 안 재미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도 빨리 시집 가.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안 가니?"
"엄마! 안 가는 거 아니거든요? 가요! 가는데, 키미가..."
"She couldn't help it. (그녀는 어쩔 수 없었어.)" 운진이 나즈막히 말했다.
"그래애. 너도 알고 이해해주었잖니. 킴벌리가 고마워 하고."
숙희가 챌리의 손을 잡아서 옆에 앉혔다. "그렇잖아도 니네들 웨딩 플랜에 대해서 파이널라이즈 하려고 했어."
"정말?"
챌리가 금새 풀어졌다. "우리 플랜대로 해도 돼?"
"엄마 좀 쉬고 하자."
운진이 그렇게 말하니 숙희가 그의 팔을 건드렸다. "엄만 괜찮아."
챌리가 새엄마의 품에 파고 들었다.
운진은 어이없다는 투로 고개를 잘래잘래 저었다.
숙희가 챌리의 머리 너머로 운진에게 눈을 흘겼다.
이튿날 챌리가 퇴근하는 길에 개리 주니어를 대동하고 왔다.
걔네들의 손에는 청첩장이 들려져 있었다.
숙희는 날짜부터 확인했다.
"그래. 알았다. 준비하는 동안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알았지?"
"네에!"
챌리가 좋아라 깡총 뛰었다.
챌리가 주니어와 나가서 저녁을 먹는다고 해서 내보낸 후, 숙희는 운진을 리빙룸으로 불렀다.
"자기는 내가 시집 가려는 애들 덩달아서 얼른얼른 찬성하는 이유를 모르지?"
"뭐라 한다고 안 갈 애들 아니라서?"
"내가 조금 있으면 배가 마구 불러오기 시작할 텐데. 좀 그렇잖아. 물론 쟤네들도 내가 임신인 걸 결국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늙은 새엄마가 임신해서 배불러 다니면 보기 좋겠어?"
"뭐..."
"내가 싫어. 아, 싫다는 말이 애들이 싫다는 말이 아니라, 배 부른 거 보여주기 싫다는 말이야. 알아들어? 축하객들 모인 데서 늙은 새엄마가 배 나와 있으면... 그러니까 챌리 간다 할 때 얼른 가라구래."
그녀의 말에 운진의 얼굴이 빨개졌다. "낼 당장이라도 가라 할까,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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