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pt.3 15-3x143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5. 05:37

   운진은 매형과 술 한잔 하자고 위스키와 소주를 각각 사들고 방문했다.
설이의 결혼식에 못간 것을 사과도 할 겸.
그리고 혹시 아내가 같은 생각으로 연락을 취하면 아무 말 내색하지 말라 할 겸.
그의 누이 운서가 운진에게서 돈을 받아서는 장을 봐왔다.
그 집에 오랫만에 고깃 볶는 냄새가 진동하고. 
운진의 특청에 의해 김치찌게가 올라왔다.
   "정식으로 찾아뵙는다 하면서도, 사는 게 뭔지. 그리고 실직자이면서도 여태 미뤘수."
   운진은 매형에게 술을 공손히 따랐다. "전에 내가 매형한테 대든 거 용서하슈."
   "야아! 살다보니 내가 처남한테 술을 다 받아본다야."
   "아직 수양이 덜 되어서 그랬수."
   "아냐. 처남이 옛날 같았으면 그 정도에서 끝났겠냐? 비로소 하는 말이지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매형. 전에 잠깐 들렀을 때 사과드렸어야 하는데."
매형과 처남 두 사내가 한가득 찬 위스키 잔을 챙 하고 마주 했다.
운서도 곁에 앉아 소주를 들었다. "정말 운진이 기 많이 꺾고 산다."
   "인생이 그렇죠, 뭐." 운진은 그답지 않게 쓰게 웃었다.
   "딸내미 둘 훌쩍 보내고 나니까, 허전해서...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피붙이 생각나서?"
   "흥흥흥. 누님은 역시 잘못 살고 계시다니까."
   "뭘?" 운서가 눈썹을 치켜떴다.
매형이란 이가 젓가락으로 운서를 가리켰다. "이렇게 꽁 맥혀서야..."
   "뭘!"
   "자리 깔고 나가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기 있다, 그 말이잖아!"
   "아니, 그럼, 누나가 동생 속 마음 헤아리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운진이 누이의 말이 듣기 싫다는 제스처로 매형에게 잔 얼른 들라는 신호를 했다.
둘이 그 큰 잔의 위스키를 쭈욱 들이키고는 내려놨다.
   "그 날 매형이 나더러 친딸 결혼 아니라서 나와버린 거냐고 했을 때 실은 다른 이유에서 나왔던 거요."
   "그 날 돌아는 갔구?"
   "가서 끝까지 마무리 하는 거 다 봤죠."
   "어엉. 무슨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되게 이상하더라구. 결혼식장에 가 있을 누나를 찾으러 왔으니, 난, 시발, 어, 이 여편네가, 그럼, 동생네 결혼식장에 간 게 아니라?"
   "아, 핫핫핫!"
   운진은 실로 오랫만에 큰 소리내어 웃었다. "말이 이... 상하네, 또?"
운서가 눈을 흘겼다. "생각하는 것들이 죄... 남자들 하여간에..."
   "아, 어쨌거나, 이렇게 찾아뵙고. 술 나누고. 누나 반찬 솜씨 맛 보고. 고맙수, 매형."
   "고맙긴. 처남 덕분에 이런 고급 양주 맛 보고. 근데, 위스키가 맛은 좋긴 좋다, 응?"
   "난 맨날 마시니까, 늘 그 맛이 그 맛입디다."
운서가 혀를 찼다. "뭐 한다구 맨날 마신대. 몸 생각해야지."
   "술을 안 하면, 잠이 안 오니까요."
   "아직도?"
그 물음을 부부가 동시에 했다. "지금도?"
운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게... 쉽게 잊혀지겠수?"
   "어쩔 수 없었잖아. 안 그랬으면 지금 이 자리에 처남이 앉아있겠어? 저 세상에 갔지."
   "아아. 자, 술이나 더 합시다."
   운진은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어이구! 벌써 저렇게 됐나?"
   "새삼스레 마누라가 겁나?" 운서 동거남이 비웃었다.
운진은 그제서야 주머니에 든 셀폰을 꺼냈다. "어이구! 열통도 넘게 들어와 있네?"
   "못 들었는데?" 운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운진은 그 못 받았다는 열통이 모두 아내에게서임을 알았다. "흐흐흐! 또 골 많이 났겠다."
운진이 간다고 일어섰다.
그러는 동생을 보는 운서가 가볍게 혀를 찼다. 
못 마땅한 게 있을 때 하는 그런. 
매형이란 이가 운서에게 눈을 꿈쩍해 보였다. 
잠자코 있으라고 할 때의 그런.

'[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3 15-5x145  (1) 2024.09.15
pt.3 15-4x144  (0) 2024.09.15
pt.3 15-2x142  (2) 2024.09.15
pt.3 15-1x141 유인작전  (1) 2024.09.15
pt.3 14-10x140  (10) 2024.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