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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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5. 05:38

   운진은 맆 스팈인지 맆 글로스인지를 흘리고 다닌다는 아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엉뚱한 곳에서 나왔는데 변명하지않는 아내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그런 것을 어디 샤핑 센터 같은 데의 공중 화장실에서 잠깐 교정하다가 떨어뜨려서 못 찾거나 서랍 같은 데에 두었다가 잊었다는 것이 아니라 외간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운진으로서는 자신을 아무리 타일러도 마음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아내의 해명이 미적지근한 것도 모자라서 단순히 그자 싸이코였나 보다고 일축하는 태도가 운진을 무척 실망시키는 것이다.
조금 나아져서 접근할 만하면 어떤 일이 불거져서 또 멀어지고...
   운진은 답답한 마음에, 누이의 말마따나 그래도 피붙이라고, 그 집을 찾아가서 술 몇잔 나누며 마음에도 없는 헛웃음을 뿌렸지만.
   '누이는 내가 허탈해 하는 것을 알아차렸겠지. 숙희와 재혼한다니까 무조건 반대부터 했던 누이인데, 결국 안 좋게 끝난다고 알면, 그럴 줄 알았다고 그러시겠지.'
운진은 답답할 때마다 찾아가는 장소인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슬프게 웃었다. '영아가 보고 싶다! 영아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다!'
그리고 영아의 품에 들어가고 싶다!
유방이 크면서도 몽실몽실하고 유난히 따뜻했던 여인 영아.

   그 날, 형록이 술 취한 운진을 모텔에다 태워다 주었던 날, 운진은 들었다.
영아가 안 간다고 하는데, 형록이 한 말을.
   '형님이 나더러 영아씨를 제발 데려가라 했단 말요.'
그리고 영아의 풀 죽어 한 말을.
   '정말요.' 
영아의 흐느낌 소리와 문 여닫히는 소리를, 운진은 다 들었던 것이다.
그 때 벌떡 일어나서 형록이를 쫓아버리고 영아랑 도망쳤어야 하는 건데! 

운진은 밤하늘에 대고 외쳤다.
   "비겁한 놈! 나쁜 새끼!"
   그는 고개를 꺾이듯 숙이고 울었다. "영아야! 영아야! 보고 싶다..."
그는 앉아있는 피크닠 테이블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당장 가서 영아를 뺏어오자!"
그리고는 제 자리에 굳었다.
그는 피크닠 테이블 의자에 도로 앉았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미칠 것 같은 심정.
정말 환장한다는 말처럼 가슴 속이 꽉 막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목도 꽉 막혔다. 
   '이 나이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여기가...'
가로등이 비추는 토막 고속도로로 온갖 모양의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너희들 다 어딜 가길래 그리 바쁘게 가나. 집으로? 집에 가면 반갑냐? 슬로우 다운, 피플! 나는 갈 곳이 없구나.'
운진은 반초도 못되게 보였다가 없어지는 차들에게 슬픈 웃음을 던졌다. '그렇게 서둘러서 갈 집이 없다, 나는... 집이야 있지. 내 집이 아니니까 문제 아니냐.'
그의 바지 주머니에 든 셀폰이 아까부터 연속적으로 진동했다.
운진은 조금 가라앉은 마음에 눈은 여전히 가로등 불빛에 숨박꼭질하는 차들을 보며 손만 움직여서 셀폰을 꺼냈다. 17통의 못 받은 콜이 있다고. "음, 왜..."
   "자기! 왜 안 와!" 
   숙희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어디야?"
   "고속도로 휴게소."
   "거기서 뭐하는데?" 
전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고함지르는 아내...
   "금방 갈께." 
운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셀폰을 접었다. 일단은 돌아가자.
그는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니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적어도 킴벌리가 남편과 돌아올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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