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갈림길
그들의 이야기는 3년 전으로 돌아가서 1977년 5월 펜실배니아.
숙희는 고모네 집 앞에 와서 멎는 크림색 콜벳 스포츠 카를 봤다.
그 스포츠 카는 뚜껑까지 활짝 열었다.
그 차에서 금발 머리에 키도 훤칠한 사내가 내렸다.
"암만 졸업 파티라고 술 너무 마시지 마라."
어떤 어른의 음성이 숙희의 등에 와 닿았다. "조심하고."
숙희는 스크린 도어를 밀었다. "네, 고모부."
그 백인사내는 제법 더운 날인데도 긴 바지를 입었다. "Hi, Jo!"
"Hi, Ralph!"
남녀는 집 앞 드라이브웨이에서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 스포츠 카는 남녀를 싣고 이내 집 앞을 떠났다.
3년 만에 졸업하는 그녀를 위한 파티가 열리는 데로 간다는 것.
어느 개인집에서 열리는 파티 장소에서는 숙희 즉 조가 단연 인기였다. 동양 여인치고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에 까맣고 윤기 흐르는 머리는 그녀의 흰 얼굴을 더욱 희게 돋보였다.
랠프는 만나는 커플 마다에게 그녀를 약혼자(피앙세)라고 소개했다.
숙희는 그럴 때마다 랠프를 흘겨주고 아니라는 도리질을 했다.
부산하게 인사 오가는 순서가 어느 정도 식어지자 남녀들은 여기저기 한데 어우러져서 자리들을 잡았다.
랠프가 숙희를 한 소파에 앉혔다.
"I'll be right back with drink. (마실 것 가지고 금방 올께.)"
그가 숙희에게 키쓰를 하려는데 그녀가 손사래질을 치며 피했다.
숙희 옆에는 백인 여자치고 덩치가 좀 작고 그냥 평범한 미인형이 앉았다.
그 백인녀에게 역시 노랑 머리인 백인 청년이 다가왔다. "Danna, My baby!"
"Hi, Jerry!"
그 남녀는 아주 밀착하는 포옹을 하고 키쓰도 쪽쪽 했다.
숙희는 그들을 은근히 피하며 미소를 지었다.
"Ralph! Wassup!"
여자친구로부터 제리라고 불리운 사내가 랠프에게 손을 흔들며 갔다.
랠프가 큰 그릇에 담긴 펀치를 국자로 떠서 플래스팈 컵에 담으며 제레미에게 귓속말을 했다.
제레미가 뒤를 슬쩍 돌아다 봤다.
숙희는 대나와 대화 중이다.
랠프가 제레미를 툭 치며 응큼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 감춰진 무엇이 드링크가 담긴 컵 하나의 위를 맴돌았다. 하얀 가루 같은 것이 액체 위에 떨어지고는 이내 사라졌다.
제레미가 대나와 얘기하는 숙희를 한번 더 보고는 표정이 이상해졌다.
랠프가 플래스팈 컵 두 개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숙희에게로 향했다.
하나는 빨강색. 또 하나는 노랑색.
숙희는 랠프가 내미는 노랑색 컵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앞 탁자에 내려 놓았다.
랠프가 마셔 보라는 제스처를 했다.
"Okay. Later. (나중에.)" 숙희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단 음료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덥고 목 마른데 시원한 맥주라면 또 모를까.
랠프의 진작부터 몸 달아 하는 것을 제레미가 지나가며 봤다.
랠프가 제 빨강색 컵을 탁자에 내려놓고 움직였다. 그의 음흉한 계획이 맞아 떨어진다면, 숙희는 그가 가져다 준 음료수를 마시고 반 혼절되고 그러면 그는 그녀를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갈 계획.
그래서 그는 빈 방을 물색하려는 것이다.
제레미가 플래스팈 컵 두 개를 따로 들고 왔다.
하나는 빨강색의 빈 것. 또 하나는 하늘색인데 뭐가 들었다.
그가 블루 컵은 대나에게 주고 랠프의 레드 컵을 쥐었다.
숙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제 앞에 놓인 노랑색 컵을 건드리기만 했다.
제레미가 아마도 랠프를 찾는 양 사방을 두리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