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1-3x003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11. 07:44

   역시 3년 전으로 돌아가서 1977년 5월 메릴랜드
운진은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한국에 다니러 나간 삼촌을 대신해서 꽃가게를 열고 닫고 한다.
그 집에 하이 스쿨 다니는 사촌 여동생이 있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얼굴만 조금 비쳤다가 슬그머니 달아나곤 했다. 그 나이 때는 친구들과 깨몰려 다니기도 바쁜 때이다. 
그래서 운진은 화원이 바쁘면 누이를 전화로 불러내곤 했다.
   어느 날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에 꽃가게는 개점휴업이다.
운진은 비를 맞아도 괜찮은 것들만 남기고 죄다 안으로 옮겼다.
   내 가게 같으면 문 닫고 들어가겠구만.
운진은 캐쉬대 곁에 놓여진 래디오의 볼륨을 조금 더 올렸다. 와, 시이! 그나저나 이번에 간신히 통과했는데. 
다음 서메스터에는... 일 다니면서 하자니 어싸인먼트 할 시간 여유가 없고.
일을 안 하면 용돈 대줄 데도 없고...
운진은 비를 맞아 깨끗하게 보이는 밤색 추렄을 쳐다봤다.
   저 놈의 추렄도 툭 하면 가다 서고.
   겨울에는 아예 시동 걸다가 시간 다 보내고.
래디오에서 보컬 그뤂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운진은 맨 손으로 기타 튕기는 시늉을 시작하며 입술로만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온 어 다크 데저트 하이웨이 쿨 윈드 인 마이 헤어
   웜 스멜 오브 콜리타스 라이징 엎 쓰루 디 에어

   "오늘 장사는 아예 완전 땡땡 제로네!"
   운진은 원래 닫는 일곱시 보다 삼십분 정도 일찍 마치려고 나섰다.
   몇 안 되는 화분들을 들여 놓아야 함이다. '그냥 놔둘까?'
그 때 흰색의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와서 멎었다.
   "Hey! Are you still open?" 젊은 백인 남자 하나가 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쳤다.
   "Yeah!"
   운진은 닫으려는데 웬 놈이야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여긴 아는 사람이나 오는 덴데 낯선 것들이. 
   "What do you need? (뭐가 필요하신가요?)"
운진은 일부러 악을 섰다. 헛탕치는 것들이면 가만 안 놔둔다고.
그자 말고 옆문으로 백인 여자가 하나 내렸다. 
결혼식에 필요한 꽃들이 필요하다고.
운진은 최대한의 스피드로 꽃다발 여러 개와 신부용 부케를 만들었다.
금액이 약 삼십 몇불 나왔는데, 남녀가 이십불 짜리 두 개를 던지듯 주고 갔다.
   "체! 오늘의 매상은 사십불이요오!"
   그는 가게 안의 불부터 껐다. "삼춘이 나중에 들으면 내가 돈 떼어 먹은 줄 아시겠다!"
그가 밖의 매달린 불들을 하나씩 끄려는데, 그의 등 뒤로 귀에 익은 브레이크 소리가 났다. 좀 전의 그 흰색 세단일 것이다.
운진은 불 하나를 덜 끄고 뒤돌아다 봤다.
아까의 백인 여자가 차에서 구르듯 내렸다. "Wait!"
그리고 뒷좌석 문이 열리고 여자 두 명이 더 내렸다.
그들이 꽃을 더 사 갔다.
   "흐흐흐! 일찍 닫았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운진은 이십불 짜리 다섯장을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다 저녁에 결혼식이라...'
   미국은 밤에도 결혼식을 한다?
   음. 하긴 낮엔 더워서 시원한 밤에 한다. 뭐, 괜찮네.
   '희한한 족속들이야!'
운진은 휘파람을 불며 불을 마저 끄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에서 문을 철저히 잠그고 안채로 들어갔다.
그는 부엌에서 라면 끓일 물을 스토브에 얹었다. 집으로 가 봐야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는 화원 안채에서 저녁으로 라면 한 그릇 떼우고 가려 한다.
   이제 그는 집으로 가면 월요일에나 돌아온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x006  (0) 2024.07.11
1-5x005  (0) 2024.07.11
1-4x004  (0) 2024.07.11
1-2x002  (1) 2024.07.11
1-1x001 1977년 그들의 갈림길  (0)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