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숙희는 운진의 야전 잠바 스타일의 그 겉옷을 좋아한다.
그녀는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화원의 뒷뜰에 나와 벌판 끝에서 시작하는 어느 야산을 바라본다.
가을이 겨울을 향해 깊어가며 먼 산들이 헐벗어 간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더 이상 헐벗지 않았다.
운진은 의외로 마음이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이다.
그는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조금의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선심을 쓴다.
그리고 그가 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청소를 하면 정말 깨끗하게 한다.
그는 군대에서 해봤다고 했다.
그는 숙희의 양말 팬티 브래지어등도 차곡차곡 개켜서 그녀의 방에 들어놔 준다.
숙희는 이제 그런 것에 부끄러움이나 부담감을 갖지 않는다.
그녀는 다음날이 둘 다 쉬는 날이면 그를 불러 세워서 술 한잔 나눌 때, 때로는 집에서 입는 목 넓은 긴 소매 셔츠에 추레이닝 바지를 입고 그를 대한다.
그녀는 때로는 안에 브래지어를 빼고 풍만한 유방만 들어있다.
술이 조금 들어가서 풀어지면 어쩌면 그녀의 가슴이 들여다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궁금해 하거나 몰래 구경하려 하거나 하지않고.
그녀 또한 어쩌다 보인 것 같아도 그리 부끄럽다거나 민망해 하지않는다.
그가 되려 집 안에서도 정장처럼 하고 있다. 폴로 셔츠 단추를 위에까지 잠그고...
숙희는 참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
어떻게 양쪽 집안에서 반대할 때는 언제고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데 전혀 들여다 보거나 계속적인 반대를 하지 않는다.
왤까.
공희모가 교회에다 온갖 험담을 퍼부었고.
운진모가 아들에게 헤어지라고 종용했다는데.
아마 시쳇말로 둘이 볼장 다 봤다 싶어서 포기들을 한 것인지.
숙희는 그렇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최대한 용기를 내어 운진을 시험해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술에 취해가는 김에 그를 덮쳐본 것이다. 솔직히 말하라면, 그녀가 그를 소파 위에서 덮쳤을 때, 그녀는 남녀 간의 정상적인 셐스가 뭔가 하는 강한 호기심이 충동으로 일었었다. 그녀가 늘 당했듯 준비도 없이 당하는 셐스가 아닌.
"어떻게 우리는 키쓰도 안 해!" 하며, 그녀가 그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키쓰까지는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껴안는 것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육체적 접촉을 피했다.
"우리는 성에 호기심이 가득한 틴에이저들이 아닙니다."
숙희씨는 준비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릴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꼭 제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서로 정 들었다고 이렇게 즉흥적으로 서로를 경험하고 나면...
"숙희씨 보다도 제가 더 못견디고 더 불쾌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키쓰도 안 해 줄 거야!"
숙희는 삐쳤다.
사실은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혔고 더 이상 그를 마주 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진짜로!"
"축하의 키쓰 같은 것은 괜찮죠."
"싫어. 안 해!"
"그래요, 그럼..."
"수상해, 운진씨."
"녜?"
"어떻게 나랑 지내면서. 내가 그렇게 매력 없어?"
"숙희씨야 매력 투성이죠.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고, 만일 우리 둘이 일 저지르면 서로 탄탄한 준비 하에 맞이하는 게 아니라서... 때가 아직 아니죠, 우리에겐."
숙희는 역시 그에게 그녀 말고 다른 여자가 있다고 단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