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부엌 식탁에서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고 있는데.
매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벌컥 열렸다.
숙희는 누군가 하고 상반신만 움직여서 내다봤다.
"숙희씨!" 운진이 큰 소리로 불렀다.
"여기이!"
숙희는 엉겹결에 수저를 든 채 손을 흔들었다. "바쁘네?"
"자요!"
"왜? 뭐?"
숙희는 부엌에서 나왔다.
운진이 누런색의 종이봉지를 내밀었다.
"그거 뭔데?"
"아침이요."
"나 시리얼 먹고 있는데..."
"자요! 얼른 받아요." 그가 봉지 쥔 손을 흔들었다.
숙희는 얼른 다가가서 그 봉지를 받았다.
운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숙희는 봉지 안을 들여다 보고, 냄새로 뭔가 알았다. 팬케잌 냄새와 계란 냄새.
그리고 젤리퍀과 시럽퍀도 보였다.
그는 새벽부터 바쁘면서도 언제 맼도날즈를 다녀온 모양이다.
그녀는 먹기 힘들고 먹기 싫었던 시리얼을 싱크에다 그대로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팬케엨에다 시럽을 잔뜩 뿌리고, 거기다 젤리도 떨어뜨려서는 먹기 시작했다. 꿀맛이었다.
잠시 후 숙희는 아침을 다 먹고 얼굴이라도 보이자고 뒷문으로 나섰다.
이제 장비들과 사람들은 멀리 이동해 있다. 어제만 해도 엉망이었던 뒷뜰이 싹 치워지고 밭도 고랑들이 마치 재로 잰 듯이 똑바로 파헤쳐져 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녀에게는 안 보이는데 개는 소리로 혹은 냄새로 그녀가 나와 있는 것을 알았나 팰럿들이 쌓인 너머에서 껑 하고 짖었다.
그녀는 핑게 김에 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암만 봐도 산더미 만한 개가 펜스 위에 앞발을 얹고 입김을 헉헉 내며 꼬리도 친다.
숙희는 그 개에게 가서 머리를 만져 주었다.
운진이 골프카트를 몰고 지나가며 숙희를 보고는 손을 그냥 들어보이기만 했다.
숙희는 반갑게 흔들다가 조금 무안해졌다.
운진의 뒤를 이어 지나가는 또 하나의 카트에 탄 히스패닠 남자 둘이 숙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때는 숙희의 팔이 내려온 후였다.
곧 이어 굉음과 진동을 동반한 추렄터가 왔다.
숙희는 펜스에 바짝 붙어서 집채 만한 그 발동체가 지나가는 것을 봤다.
그 위에 탄 흑인 남자가 숙희에게 모자챙을 만져 보였다.
숙희는 그 흑인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대체 종업원이 몇이야...
숙희는 벌판에서 삼삼오오 떼지어 걸어오는 사람들을 봤다. 다 여기 일하는 이들이야?
그렇다면 그녀에게 운진이 다시 보여진다.
그는 아마도 단순한 화원을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추렠터가 앞 주차장에 나가서 발동이 꺼지며 조용해졌다.
숙희는 그제서야 운진이 그 추렠터에 가려졌다가 나타난 것을 봤다.
가볼까 말까...
또 바쁘다고 지나가 버리면 어떡하지...
숙희는 그렇잖아도 찬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냥 들어가자. 도움될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화원 앞 주차장을 비우기 시작했다.
추렠터는 아마도 화원 뒤로 들어오려는 궁금증의 차들을 가로 막으려는 시도인가 보다. 그 추렠터는 골프카트만 충분히 드나들 정도의 공간만 남기고 섰다.
운진이 그 추렠터의 운전자 흑인에게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고 나서 숙희에게로 돌아섰다.
"앞으로 뭘 할 건가 구경 시켜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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