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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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26. 13:08

   숙희는 이 곳 화원으로 부친과 공희모가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던 날, 운진이 등을 보이고 떠나려 했던 때의 장면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하다.
그녀는 그 때의 장면만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온다.
   휴우!
   그 때 내가 안 쫓아 갔더라면...
그 날.
운진이 개와 뜀박질을 실컷 하고는 땀이 번질번질한 웃통 바람으로 어둠을 스쳐 지나갔다.
추렄 뒷칸의 쇠문이 탕 닫히는 소리에 그녀는 원두막에서 뛰어 내려갔다.
그녀가 슬리퍼가 벗겨지며 맨발로 앞뜰까지 뛰어 가니 추렄은 이미 길로 나갔다.
   "운진씨!"
   그녀의 외침은 차라리 뜻 모를 울부짖음 같았다. "운진!... 씨."
개가 추렄의 뒤 짐칸에서 숙희를 보고 짖었다.
껑껑껑!
개의 짖음이 벌판에 메아리쳤다.
추렄이 끼기기긱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섰다.
숙희는 눈물이 나와서 추렄 쪽을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녀는 소리 없이 대성통곡을 했다.
추렄이 후진으로 해서 화원 앞으로 돌아왔다.
숙희는 맨발로 몇걸음 더 걸어서 그에게 우는 모습이 안 보이고 싶었다.
개가 뭘 알았나.
개가 추렄 짐칸 문에 앞발을 올리고는 껑껑껑 짖는 것이었다.
운진은 추렄에서 내리며 숙희의 맨발부터 봤다.
그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뒤로 안았다.
   "진짜 못됐어." 
   숙희가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날 울리는 게 취미예요?"
   "혼자... 바람 좀 쐬고 오려고 했어요."
   "그렇게 나가면... 뒤에 남는 사람은 심정이 어떨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숙희씨도 나 없이 생각할 시간 여유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
   "갈 데 없어서 신세지는 사람, 이렇게 대접하는 거 아니예요."
   "..."
   운진은 또 말하고 싶다. 신세지는 것 아니라고.
   "비참해, 증말..." 숙희가 말끝에 또 울먹였다.
그 날 밤바람에 운진의 벗은 웃통에서 풍기던 그의 체취가 숙희의 코를 엄청 자극했다.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남자의 땀냄새를 맡고 남자의 미끌미끌한 생살을 접했다...
그날.
   휴우!
   그 때 그가 안 돌아왔더라면...
   숙희는 마실 것을 얼음을 흔들어 가며 싹 비웠다. 이 남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기 때문에 아마 그 날 그대로 떠나고도 남았을 남자지.
숙희는 이제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이 남자가 아주 은근히 내 자존심을 살살 짓밟어. 
운진도 차이니스 음식을 말끔히 비웠다. 
   "아, 잘 먹었다! 숙희씨가 침 흘려 놓아서 그런지 유난히 더 맛있었네."
퉁!
숙희가 빈 컵으로 운진의 머리를 때린 소리다. "그만 해?!"
   "뭐, 하긴, 우리 키쓰도 하지, 참, 참!" 운진이 먹은 것들을 치우려고 일어서려 했다.
퉁!
숙희가 빈 컵으로 그의 머리를 또 때렸다. "그만 하랬지."
그러면서 그녀는 어떤 스릴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오면 또 때린다?"
   숙희가 빈 컵을 들어보였다. "키쓰 운운하는 거 보니까 또 응큼하게 나오려고!"
   "해 달라는 방법도 여러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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