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손님이 거의 없는 가게를 지키는 고역을 강제로 참아내고 있다.
온통 가짜 액서서리를 파는 가게는 어쩌다 틴에이저들이나 기웃거리다 나갈 뿐 어른들은 밖에서 간판이나 유리에 붙인 설명들이나 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무슨 날 때 되면 가짜라도 사서 교환하려는 좀 가난한 아베크가 북적거린다고.
그녀의 부친은 타고 난 바람끼를 제지 못하고 옆의 가게에서 옷 수선하는 독신 아주머니에게 아침부터 가서 치근거린다.
공희의 모친, 즉 숙희의 계모는 무슨 말을 들었나, 의붓딸을 첫날부터 순순히 대했다.
가게의 전화가 벨소리도 크고 촌스럽게 띨릴릴리 하고 울어댔다.
숙희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수화기를 집었다.
아빠가 벨 소리를 듣고 오려나 하고.
"에이치 앤드 티 주얼리?"
"숙희니?"
"아, 고모!"
"잘 지냈어?"
"응! 고모는?"
"나야, 뭐, 맨날 집 지키는 바둑이지."
"고모는 맨날 그래."
"다름이 아니고. 상훈이가 왔는데, 글쎄, 부득부득 너 있는 데를 가르쳐 달라는구나."
허걱!
숙희는 이 때부터 숨 막혀 하는 습관이 다시 생겨났다.
"고모. 저요, 상훈이 만나고 싶지 않은데요."
"근데, 글쎄. 공희네다 전화를 걸어서는 주소 알아서 막 떠났구나. 그래서 고모부 말 듣고 내가 너한테 알려주는 거야. 미안하다, 얘야."
"상훈이가 운전, 벌써 해요?"
"한국에서 군대 있을 때 배웠다며, 라이센스도 없으면서 내 차를 타고 갔다."
숙희는 수화기를 탁 놓았다.
그녀는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때 마침 옆의 세탁소에서 껄껄껄 웃으며 나오는 그녀의 부친이 봤다. "숙희야!"
"아빠, 가게 보세요!"
그녀는 세탁소 앞에 매달린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상훈이가 이리로 와요!"
"뭐? 아니, 그 자식이 죽고 싶어서 미쳤나? 내, 고모에게 당장 전화해야겠다!"
숙희는 공중전화로 김 사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의 아파트 전화는 불통이라는 메세지가 나왔다.
불통이라면 통화불능이란 말인가 본데. 끊겼나?
그렇다면 그녀로서는 어디 전화 더 걸어볼 데가 없다.
그녀는 가게로 도로 들어갔다.
상훈은 그 날 메릴랜드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펜실배니아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숙희는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제나 저제나 원수같은 사촌이 들이닥치나 조마조마해 하다가 미국 시간으로도 자정을 넘기고는 자러 들어갔다.
그녀는 방문을 꼭 잠그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겉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들었다.
멀리서 집 전화기가 삘릴릴리 하고 울어대는 것을 들었다. 그 벨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밤새 울릴 기세이다. 아무래도 상훈이가 계속 거는 것 같다.
누군가가 받겠지.
숙희는 방문과 창문을 번갈아 보고는 머리를 뉘었다. 미친 놈! 오기만 해라!
결국 누군가가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공흰가? 저 공희는 주책없이 날 깨운다고 오는 거 아냐?
숙희는 귀를 기울여서 들으려 하다가 아무 소리도 못 듣겠어서 포기했다. 오기만 해라!
그리고 그녀는 잠에 빠졌다.
그녀는 꿈에 상훈이를 때려주려는데 자꾸 헛손질만 하고 빗나갔다.
상훈이는 요리조리 피하며 숙희의 몸 부분을 여기저기 만졌다.
숙희는 여자이지만 운동을 배웠는데 상훈에게는 손 발이 잘 안 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