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선 4번 도로에 앞서 가던 차들이 하나둘씩 브레이크를 밟더니 얼마 안 가서 모두 선다.
"흥! 아까 이멀전씨 켜더니 뭔일 생긴 모양이네?"
병선이 아까 마지막이라고 보인 캔 맥주 빈 것을 창 밖으로 또 던졌다.
운진은 대꾸없이 저 멀리 전방에 보이는 경조등들의 불바다를 보았다.
그 때 머리 위에서 어떤 특유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병선이 유리 열린 데로 상반신을 내놓고 위를 쳐다봤다. "성! 메딬(Medic) 인데?"
"메딬 헬리캎터야?"
병선이 몸을 바로 했다. "Somebody got fucked up! (누군가가 작살났구만!)"
"흠... 낚시 가면 잘 갈 것이지."
"술 먹고 운전했나부지, 뭐."
"술 먹고 운전 못 할 것 같으면 아예 먹질 말던가."
"남들이 다 성 같은 줄 알아? 성이나 이빠이 마시고도 집에 가지."
"정신력이 문제거든."
"에이, 근데에... 잠이 오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
이제 차들은 완전히 섰다.
운진은 헤드라이트를 스몰로 바꾸었다. 그리고 기어를 뺀 후 클러치도 떼었다.
병선이 담배를 권했다.
운진은 고개를 저었다. "비싸서 끊었다."
"담배를 어떻게 끊어?"
"그냥... 끊었더니 끊어지더라구."
"담배 끊는 놈한테는 딸도 안 준대, 성. 독한 놈이라구."
"흐흐흐! 씨발, 장가 아직 못 가는 이유 또 하나 생겼다."
"그러네, 응? 흐흐흐!"
병선이 담배를 피워 물고는 전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헬리콮터 내렸는데?"
운진은 전방을 자세히 봤다. "저거 추레일러 아냐?"
"그런... 가?"
병선이 앞을 자세히 봤다. "옆으로 누웠네?"
"흥! 낚시는 다 갔다."
"좆같이...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왜 하필 우리 앞에서 자빠졌냐!"
"여기서 밤 새게 생겼다."
"어이구, 씨발!" 병선이 대쉬보드에다 맨발을 얹었다.
앞에서 희망을 걸고 브레이크를 밟던 차들이 하나 둘씩 어둠 속으로 지워져 갔다.
차들은 마치 익숙한 양 아예 불들을 끄고 엔진도 끄는 것이다.
운진도 엔진을 껐다.
사방이 갑자기 적막에 휩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병선이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험한 여행길 너와 나누리~
병선이 노래를 뚝 끊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씨발! 사는 게 좆같어, 성! 나도 성처럼 내색않고 넘어가려 했는데, 난 성만큼 수양이 안 되었나 봐."
"너 무슨 일이 있구나?"
"... 걔랑 헤어졌어."
"뭐?"
"그만 하재."
"아니, 저번 날까지만 해도... 너랑 나랑 같이 술 먹었잖아. 뭐 그러냐?"
"여기서 메릴랜드 대 나온 새끼하고 누구 소개로 만났대나. 거기서 혹 하나 봐."
"니 애인, 인물이야 좋지."
"그저께 마지막으로 만난다고 해서, 그 기집애 아파트로 가서 마지막으로 조지구. 끝!"
병선이 담배를 연결해서 또 붙였다. "나더러 평생 비밀로 해 달래, 성."
운진은 대꾸 대신 한국에 그렇게 두고 온 여자가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