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눈 오는 날에
숙희는 오늘도 망설인다.
부친네 가게를 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그녀가 고모네 가서 빌려다 준 돈으로 그녀의 부친은 위싱톤 디 씨 국회의사당에서 남쪽으로 빠지는 준 고속도로 변의 동네에 구멍가게를 인수했다고.
그로서리는 통상 일년에 거의 삼백육십오일 오픈한다.
공희는 집에 있고, 주말 매상이 바쁜 날만 같이 나간다고.
그 가게는 그녀가 근무하는 은행에서 동쪽으로 좀 많이 가다가 만나지는 295번 도로라는 준고속도로를 타고 남행으로 꺾어져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만난다고.
그러나 그녀는 이 날도 아파트로 곧장 갔다.
아파트는 가로등마다 캔디 케인과 스타 모양의 등 장식을 다느라 일꾼들이 부산하다.
그녀는 오늘도 건너편 건물을 안 보는 척 하며 봤다. 추렄은 오늘도 없다...
그 새 이사갔나?
그러던 어느 날.
건너편 아파트 건물에 이사할 때 빌리는 카고 추렄이 뒤로 대어져 있고.
그리고 숙희는 그 짙은 색의 추렄이 옆에 나란히 세워진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내가 카고 추렄에서 짐을 내려서는 그 건물로 나르는 것을 보았다.
숙희는 누가 이사 들어오는 것을 그가 도와주는 건가 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때 숙희에게 말을 거는 어떤 여성이 있었다.
한국분이신가 하고.
"네?" 숙희는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사이의 아주 차분하게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숙희는 인사부터 했다.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얼른 보고 외국분이신가 했는데, 한국분이시네요?"
"제가 외국사람으로 보이나요."
"키가... 한국분 치고는 크시네요."
"네..."
"아. 저는 요 앞, 아파트에 이사와요. 여태 우리 부모님하고 남동생이 살았었는데, 부모님은 다른 데로 가시고, 남동생 혼자 살다가 쓸데없이 방만 많다고..."
"아, 네..."
"동생도 따로 나가고, 우리가 이사 들어와요."
"네..."
"직장생활 하시나 봐요?"
"네."
숙희는 슬슬 김이 새는 기분이다. 친절하게 나오는 여인이 이사 들어오는 것 보다 똥색 추렄의 사내가 이사를 간다고.
그가 밬스 하나를 끌어안으며 이쪽을 봤다.
"얘, 잠깐만!"
그녀가 참견하는 자세로 움직였다. "만나서 반가와요."
"네!"
그녀가 또 얘 잠깐 하며 주차장을 건너갔다.
숙희는 그 사내가 밬스를 안은 채 등을 보이며 기다리는 것을 보고, 그녀도 돌아섰다.
숙희는 씻기부터 하고 혹간 잘 그러듯 베란다 유리를 통해 건너편을 봤다.
그 새 카고 추렄은 없어졌다.
그리고 그 짙은 색의 추렄도 역시 안 보였다.
숙희는 괜히 낙담하는 심정으로 베란다 문 앞에서 돌아섰다.
그녀는 보지 않고 팔만 뻗어서 커튼을 확 가렸다.
'이제는 내다볼 일이 없겠다.'
그녀는 커튼을 꼭꼭 여몄다. '그 때 이름이 오 뭐랬더라.'
숙희는 이유 모를 허전함이 스며들어도 내버려 두었다.
그 때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