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의 환상의 그 시발점
병선이 화원 앞문을 발로 차듯 열어젖혔다.
운진이 영진을 안아 들고 들어섰다. "야! 목욕탕에 물 좀 미지근하게 틀어!"
"알았어, 성!" 병선이 작업화를 신은 채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운진은 영진을 소파에 뉘이고는 그제서야 앞문을 닫으러 달려갔다.
안에서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야! 뜨거우면 안 돼! 응?"
"알았어, 성!"
안에서 수돗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하는 소리가 났다.
운진은 영진의 구두를 살살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발을 만져봤다.
그녀의 조그만 발은 딱딱하고 숫제 얼음이다.
에잇! 망할 놈의 집구석!
길이 얼어서 천천히 움직인다고 했건만, 무슨 일 나나!
병선이 나왔다. "성..."
"야. 같이 좀 들자."
"알았어, 성!"
두 남자는 축 늘어진 영진을 받쳐 들고 목욕탕으로 갔다.
거기서 그녀를 운진이 받쳐서 안고 손짓으로 양말을 벗기라고 했다.
병선이 그녀에게서 양말을 살살 벗겨냈다.
운진은 물에 손을 담궜다. "야. 찬물 좀 더 섞어주라."
"어, 벌써 찬데."
"안 돼. 거의 찬물에서 녹이기 시작해야 해. 뜨거운 데 넣으면 일 난다."
병선이 고개를 갸웃하며 찬물을 틀었다.
"야, 그리고 너 신발 벗어."
"오, 참! 급해서..."
병선이 찬물을 잠그고 나갔다.
운진은 영진의 발을 물에다 약간 담궜다. 그리고 그녀의 발을 살살 주무르기 시작했다.
병선은 운진이 시키는 대로 물의 온도를 조금씩 올리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운진은 축 늘어진 영진을 받쳐서 안고 손과 발을 녹이느라 지쳐가고.
그러다가 그녀의 시퍼렇게 얼은 것처럼 보이던 얼굴이 차차 분홍색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녀의 거의 안 들리던 호흡 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성. 이런 건 군대에서 배워?"
"겨울에 혹한기 야영 훈련 나가면 동상 걸리는 애들 많어. 그러면 소대장이나 중대장들이 철저하게 이렇게 시키지. 그냥 뜨겁게 해 주려다간 곪고 부러진대."
"어는데 곪아?"
"그렇더라구?"
이제 운진은 영진을 통채로 물에 담그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나지않는다. 옷 벗길 용기가.
그래서 그는 다른 생각을 해냈다. "병선아. 뒤에 가면 드럼통에 불 피우던 게 있었는데. 그걸 뒷문 가까이 끌어다가, 거기다 나무 불 좀 피울래? 많이 떼지는 말고."
"연기 집안으로 들어오면 안 좋잖아."
"그래도 그게 젤 낫겠어. 아까도 했었어."
"해 볼께."
운진은 병선이가 나간 틈을 타서 영진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어서 만져봤다.
아직도 차네...
그나저나 그 집에다 연락은 하는데, 또 무슨 쌩난리를 피울래나.
에잇! 망할 놈의 집구석!
그 때 영진의 몸이 조금 꿈툴거렸다. 물에 담긴 발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손 하나가 움직였다. 마치 다리를 긁으려는 듯이.
어! 동상인가? 얼어서 간지러운가?
운진은 그녀의 작은 발을 물 속에서 주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