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13-1x121 1977년 그들의 겨울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2. 00:42

1977년 그들의 겨울

   운진은 어쨌거나 약속은 약속인지라 성가대의 연습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힘이 없고 그저 악보 콩나물 대가리나 읊는 정도였다. 그가 그러하니 그의 곁에서 그의 음을 따라잡는 이들도 자연히 소리가 안 나왔다. 
성가대 대장과 지휘자는 불만이었지만 참는 기색들이었다.
지휘자 선생이 쏘프라노 독창이 불참인데다가 알아보니까 버지니아 주에 내려가서는 연락 불통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식식거렸다.
정작 아버지인 최 장로도 연락이 안 되어 소식을 모르겠다고 사죄만 했다.
그런데 유독 운진만 눈치챘을까.
   장로가 되어 갖고 거짓말 하는데?
운진은 저도 모를 어떤 지레짐작에 몸서리를 쳤다. 집에 있으면서 안 나오는 거 같은데?
반주를 맡은 영아는 어려운 부분을 자꾸 틀리게 쳤다.
   운진은 진희를 따로 우연인 것처럼 만나서 얘기했다.
   반주를 부득이 한 경우가 아니면 계속 하시자고. 
그랬더니 진희가 환히 웃었다. 미스타 오가 절 붙잡으시면 해야죠 하며.
   "녜! 이번 성탄절 특별찬양은 미쓰 강 아니면 누가 반주해요."
운진의 그 말에 진희는 실제로 감격했다고. "교회에단 안 한다고 했는데..."
   "연습 때 그냥 나오세요."
   "알았어요!"
운진은 진희와 셐스한 것이 환상에서이지 실제는 아닐 거라고 여겼다.
그녀가 화원으로 찾아와서 영진에 대해 말할 때 예의를 갖추고 거리를 띄운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그렇다고 미친 놈처럼 우리 같이 잔 사이 맞냐고 물을 수도 없고.

   최 장로가 운진을 따로 불러 세워서는 저녁 초대에 오라고 사뭇 명령쪼로 말했다.
그래서 운진은 겸사겸사 최 장로 댁으로 갔다. 
장로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볼 겸 그리고 최영란도 좀 볼 겸 해서.
운진 혼자만의 저녁 초대였고. 운진은 그 집에서 영란을 봤다. 
   버지니아에 갔다더니. 뭐, 그 새 왔다고 거짓말 하려고?
이 때도 그 집의 둘째 딸 영아가 운진을 몹시 반겼다.
운진 차례에 밥을 받아 가라는데 영아가 내가 내가 하면서 뛰어 다녔다. 
영아가 밥 담긴 종이 접시를 운진 앞에 놓았다. "Here!"
   "고맙다... 이름이 뭐야?"
   "마이 네임 이즈 영아."
   "영아. 이름이 참 이쁘다."
   "으흠?" 영아가 뽐내며 갔다.
아무도 그들의 말 나눔을 눈여겨 보지않았다. 
그냥 청년이 조카뻘 소녀와 말을 주고 받는 정도로 여겼다.
이 집의 작은 딸 영아는 집에 손님이 오면 심부름 하는 것을 좋아하기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이 날 영란은 운진에게 별로 친절하지않았다.
운진은 몸보신만 잔뜩 하고 그 집을 나섰다.

   그런 후 교회는 성탄절 특별예배를 일주일 후로 맞았다.
이제 성가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종연습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직 화음이 안 맞았다.
그리고 운진은 최 장로의 꾸중을 들었다.
   암만 남자라지만 사람이 왜 그리 냉정하고 무심하냐고.
   "미스타 오는 굉장히 깨인 사람으로 알았는데, 실망이네." 그런 말이 최 장로에게서 나왔다.
운진은 그런 말의 뜻과 최영란이 집에 있으면서 어디 갔다고 거짓말한 이유를 설마 나한테 토라져서 하고 비웃는다. 나더러 깨인 자? 그렇다면, 진짜... 
   한번 깨놓고 말해 봐? 미혼모요, 아니면, 이혼녀요 하고.
   그랬다가 유부녀 희롱죄로 걸리면 나만 골치 아프지...
   그나저나 마치 그 여자가 나 때문에 아주 선심 쓰듯 성가대에 나오는 것처럼 굴어?
운진은 핑게 김에 성가대건 뭐건 때려치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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