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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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1. 04:51

   운진은 화원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이 술이다.
희한한 것 한가지는...
그는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평상시에 멍청하다고 여기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다.
오늘 그는 그런 술이 하고 싶었다. 그는 취하고 싶었다.
그런 다음 그는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는 영진이란 여자가 오빠와 돌아간 이후와 한국으로 나갔다는 싯점을, 술 힘을 빌어, 수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차근차근 따져보려는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 우편으로 온 파이널 결과를 받아서 알고 있다.
   2.1 지피에이로 통과한 결과를.
   미쓰 킴은 아마 원하는 삼 점 영을 넘었겠지. 그래서 맘 놓고 한국을 나갔나 보다.
운진은 사촌동생이 봉지를 끌어안고 들어서는 것을 그냥 보기만 했다.
   "성, 진희랑도 헤어졌지?"
병선의 그 말에 운진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손이 딱 굳었다. "왜 묻냐?"
   "진희가 사실은, 성을 더 좋아했는데... 성이 영진이란 여자와 어울리니까..."
   "잤냐, 둘이?" 운진은 병선의 급소를 찔렀다.
병선이 눈에 띄이게 움찔했다. "영진이란 여자 때문에 성을 가까이 못 한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운진은 비웃고 싶어졌다. 
영진씨랑 나를 갈라놓으려고 그러더니. "그래서?"
   "아마 이번 겨울 학기부터 반주를 안 할 건가 봐."
   "어. 그럼, 누가 또 와야겠네?" 운진은 자신이 언젠가 한 말을 반복한다고 느꼈다.
   "최 장로네 둘째딸이 여기 나이로 6학년인가 하는데. 찬송가 정도는 친대."
   "최 장로네 둘째딸?"
   운진은 그 집에 갔었을 때 문을 열어 잡던 여아가 눈 앞에 떠올랐다. "으응..."
   "큰딸은, 성, 알지?"
   "그 쏘프라노."
   "맞어."
   "근데, 그 여자 가정이 있냐?"
   "엄마가 어쩌다 지나가는 말로 하는 걸 들었는데. 미국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나 봐. 남자는 한국에 있었을 때 미술 선생이었대나?"
   "오오. 남자가 있네."
   "근데 여기 와서는 선생을 못 하니까, 버지니아 어디서 새집 사이딩 헬퍼 하..."
   "말했잖아."
   "딸이 아마 하나 있지?"
   "그럴... 걸?" 
   운진은 슬슬 김이 새 간다. "한 여섯살? 다섯살?"
   "그 여자 나이하고 여자애 나이하고 안 맞는 걸로 봐서... 정식 결혼한 부부는 아닌가 봐."
   "그럼, 어떻게 같이 들어왔을까?"
   "난 그냥 여전도회 회장하는 엄마한테 귀동냥 한 것 밖에는 몰라, 성."
두 사촌은 그냥 술만 서로 권한다. 
서로 각자 생각이 많은 것이다.
하나는 갑자기 한국으로 사라진 여자를 생각하고.
하나는 데리고 다니려던 여자가 사촌형 볼 면복이 없다며 헤어지자 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병선은 진희에게 깨놓고 물어서 그녀가 사촌형과 잠자리를 했다는 말을 들었고.
운진은 아마 그 여자네 집에서 그 정도로 반대하나 보다고 지레 실망하는 중이다. 이 시발놈의 세상은 인간을 속에 뭐가 들었나로 보는 게 아니라 뭘 하나로 봐요... 
   그래서 날 봤을 때 니네 부모 청소차 탄대매 하고 나한테 소금 뿌리더니.
   뭘 알았는지 나중에는 간사떨다가. 이젠 또 딸을 빼돌려...  
운진은 어쩌면 진희 마저 사촌동생에게 빼앗기나 보다 여겼다.
   그렇다면 난 최영란을 찍어 봐? 딸 같은 애가 누군지 알아 보고?
   운진은 아마도 사촌동생이 진희와 더 나갔으면서 양심 보다는 예의상 숨긴다고 여긴다. "난 한국 나간 여자와도 피아노 반주하는 여자와도 아무런 사이 아니다. 나 의식하지 마."
   "체! 내 성 그럴 줄 알았지! 성한테 몸 준 여자가 어디 한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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