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어쨌거나 피앙세와의 저녁 약속을 지킵시다 하고, 둘은 정말로 나갔다.
둘은 한국식 식당으로 갔다.
둘은 서로 말 없이 음식을 주문하고.
서로의 앞을 내려다 보고 하다가 결국 숙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워드는... 나를 은행 일에 깊숙히 알도록 가르쳐 준... 선생인 셈인데."
"전에 말했잖아요."
"근데... 그의 의도가 안 좋았어서 헤어, 그만 둔 거야."
헤어졌다는 표현과 그만 두었다는 표현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얼마만큼 밀접한 관계였었나를 가늠할 수 있는 표현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만 두었다는 말은 직장을 떠났다는 말.
헤어졌다는 말은 인연을 끊었다는 말.
"녜. 말했잖아요."
"근데, 참 끈질기게 구네."
"같은 직종에 종사하다 보면 더러 마주치는 일이 있겠죠."
"마치 나한테 거미줄을 쳐 놓고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붙는 것 같애."
"흐..."
운진은 숙희의 지나친 반응이 거슬린다. 특히 하워드란 자는 오래 산 부인과 이혼까지 하며 숙희에게 구혼했다던 자 아닌가.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덤볐던 자가 어디 그리 쉽사리 물러서겠나...'
'그런 거 보면, 숙희 저 여인의 바깥 처세술이 참 의심스럽네.'
숙희는 제인에게서 들어 하워드가 하향세임을 알고 있다.
아마도 이번에 숙희가 매각해 주려는 돈 가게를 어떻게 얻어서 일어서보려는 의도인지. '이번에 호의를 배풀어 주면 완전히 떨어져 나가려나...'
그래서 숙희는 그 생각을 운진에게 털어놨는데.
"말로는 인연을 끊었으면 한다 하고, 일을 연결시키면, 하워드가 혼동하지 않을까요?"
"그... 그런가?"
"물론 일은 일이고, 인연은 인연이지만. 하워드가 찾아와서 처음 던진 말이 그는 영문을 모르고 숙희씨와 헤어졌다더군요."
"거짓말!" 숙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가... 부인과 이혼까지 할 정도였으면... 그냥 대충, 한 직장에서 알고 지낸 사이를 초월한 거 아닙니까? 그냥, 아, 나 저 여자와 이루어지고 싶다. 그런 생각만으로 이혼을 합니까?"
"하워드는 그 전부터 부인하고 사이가 안 좋았대."
"물론... 숙희씨가 빌미를 주었는지... 는 아무도 몰라요. 내 생각인데."
"왜!..."
숙희는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그녀는 운진에게 솔직해지기로 한다. "그 때는 하워드가 백인들 답게 참 친절하구나 하는 정도였어. 그가, 운진씨 말처럼 아닌 말로, 나한테 흑심을 품었다고 알았을 때는 금고 키를 넘겨주고... 오페라로의 초대였어. 티켓이 어떤 클라이언트로부터 왔는데. 그걸 왜 나랑..."
"..."
"부인하고가 아니라 나랑?... 그래서 그만 둔 거야."
"끊을 거였으면, 그래도 말은 했어야죠.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냥 사라져 버리면, 남은 사람은 수수께끼 속에 빠져요."
"나는 아니니까."
"표현을 하세요."
"나는..."
숙희는 그런 표현을 못 한다. 아니.
그녀는 감히 의견을 표현하며 자라질 못 했다.
어디 여자애가 말대꾸를 하느냐고 꾸짖던 아버지 때문에. "그런 거 할 줄 몰라."
운진은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비굴한!
그래서 나는 이 여자한테 선을 긋고 넘어가지 않는 거다.
"하워드... 나쁜 자 같진 않아 보이던데요."
"나쁜... 사람은 아닌 거 맞어."
"아직 마음이 남은 거예요?"
운진의 말에 숙희는 바로 대답이 안 나갔다. 내가 정말 그런가?
"대답을 바로 못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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